남성과잉사회/마라 비슨달 지음/ 박우정 옮김/ 현암사 펴냄
미국의 쇼핑몰과 슈퍼마켓, 고속도로, 병원, 회의실과 교실, 극장과 사업장이 모두 남자로 채워져 있다고 상상해보자. 버스나 지하철 속에 여자는 없고 남자만 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혹은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여자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상상해보자. 아내와 딸, 직장의 동료, 학교의 선생님 등 말이다.
아시아에서 최근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전체 여성 숫자보다 많은 1억 6천300만 명의 여성이 사라졌다. 납치나 실종이 아니라 낙태에 의해서.
인간의 자연 출생 성비는 '여성 100명당 남성 105명'으로 알려져 있다. 출생 성비가 100대 107, 100대 108만 되어도 성비 불균형이 우려되는 수준으로 해석된다. 지은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들의 출생 성비는 1980년대에 한국, 타이완, 싱가포르의 일부 지역이 109를 넘어섰고, 인도는 112, 중국은 120에 이르렀다. 중국의 롄윈강에서 5세 이하 아동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63명으로 나타났다. 장시성 이춘의 4세 이하 남아의 출생 성비는 137, 광시좡족 자치구 팡청강은 153, 후베이 성 톈먼은 176에 이르렀다.
인구통계학자인 크리스토프 길모토는 2005년 '이 같은 불균형한 수치를 자연출산 성비에 대입할 경우 근래 수십 년 동안 아시아에서 1억 6천300만 명의 여아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한다.
젊은 남성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은 단순히 혼인을 못하는 남성이 늘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에이즈와 같은 전염성 성 질환의 확산, 출산을 감당할 여성의 부족으로 급격한 인구감소, 군사인력 확대에 따른 국제적 긴장 고조, 신부 구매, 납치와 인신매매, 짝을 구하지 못해 좌절한 남성들이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위협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남성에게 훨씬 다량으로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때문에 사회 전체가 흥분상태 혹은 공격성과 모험심이 과잉된 상태가 될 위험도 높아진다.
지은이는 출생 성비가 이처럼 심각한 불균형을 보이는 것은 문화적 편견 때문이 아니라 경제성장과 의료기술 발전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초음파 검사와 낙태의 조합이라는 것이다. 아시아 개발도상국에 성 감별과 낙태가 '유행'처럼 퍼진 배경에는 서구 강대국 단체들이 제공한 수백만 달러의 자금과 수천 명의 현장 요원, 수많은 이동 진료소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산업계의 이기심도 한몫을 했다고 말한다.
한국은 세계 인구학계가 '성비 불균형 해소국가'로 주목하는 국가다. 성비 불균형이 심각하게 나타났다가 선택 낙태를 일소한 유일한 국가로 세계 인구계획기구에 보고돼 있기도 하다. 2009년 인구통계학자 모니카 다스 굽타는 '한국은 경제발전과 새로운 성 인지적 정책 공세가 공조를 이루어 성차별적인 가치를 약화시켰기 때문에 출생성비가 균형을 이루었다'고 발표했다. 도시화와 교육확대가 남아 선호를 뒷받침하는 사회구조와 가치를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지은이 마라 비슨달은 "한국의 남녀 출생 성비가 균형을 이룬 것은 낙태문제가 해소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매우 힘들어졌기 때문에 성별에 관계없이 하나만 낳고 마는 가정이 늘면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며, 인구문제에서 한국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 마라 비슨달은 사이언스지의 베이징 주재 특파원이며, 이 책 '남성 과잉 사회'(원제Unnatural Selection)는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최종 후보 및 《월 스트리트 저널》 선정 올해의 책, 《슬레이트》 선정 올해의 책, 《디스커버 매거진》 선정 올해의 책 등에 선정되었다. 404쪽, 1만 8천 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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