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숨은그림찾기

우리가 흔히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진실은 연착(延着)하는 열차'라는 말이 있다. 늦기는 해도 언젠가는 도착한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진실은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

여름의 한복판, 대한민국 국민은 일제히 '숨은그림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2007년 남북회담 대화록 원본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답을 쥔 전직 대통령은 세상을 뜨고 없다. 남은 사람들끼리 이해관계에 따라 목청을 높이더니 결론은 "없다"와 "못 찾았다"로 나왔다.

"없다"는 없는 것인 줄 알겠는데, "못 찾았다"는 무슨 뜻일까. '있기는 분명 있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는 뜻이라면 그토록 훌륭한 분들도 못 찾는 대화록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일까. 솔로몬 대왕을 모셔와야 하나 아니면 함무라비 법전에 물어봐야 하나.

아이들이 대여섯 살 무렵이었을 때 신문 광고란을 대상으로 '숨은그림찾기' 놀이를 하곤 했었다. 엄마인 내가 '돼지!' 하고 소리치면 아이는 눈을 부릅뜨고 돼지를 찾기 시작한다. 주로 구석에 있는, 작은 그림을 중심으로 찾는다. 인간의 심리다. 퀴즈나 질문에 나오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곳, 찾기 힘든 곳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너 번 점점 더 작은 그림으로 몰아가다가 문득 대문짝만 한 큰 그림을 말하면 아이는 절대로 못 찾는다. 바로 코앞의 큰 그림은 보지도 못한 채 주변을 뒤적이느라 고심고심하다가 결국은 손을 들고야 만다.

"여기 있네!" 내가 바로 눈앞의 큰 그림을 손으로 짚으면 아이는 약이 올라 씩씩거린다.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공들여 구석구석을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까이 그것도 너무 크게 답이 거기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틀렸다. 아이는 내게 속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속은 것이다. 제 꾀에 속아 바로 앞에 답을 두고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없다"는 쪽이나 "못 찾았다"는 쪽의 공통점은 "안 보인다"는 것이다. 왜 안 보일까. 사본이 있으니 원본이 없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원본이 있었기에 사본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거짓말, 그것이 정치인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독(毒)이 되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일까.

'숨은그림찾기'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다. 그림에 속고 자신에 속는 동안 아이는 훌쩍 자란다. 아이는 어른이 되고서도 문득 한 번씩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쉽고 큰 그림일수록 신기하게도 찾기가 어려웠던 그 시절을.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강사 giok04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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