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육사의 굴욕

육군사관학교는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로 출발, 이듬해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를 거쳐 1948년 9월 5일에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어 발족했다. 해방 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호국 간성을 육성하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일본식 군사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다가 이후 미국식 프로그램을 많이 도입하는 등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웨스트포인트는 1802년, 신생 미국의 군 장교 양성을 위해 같은 해에 설립된 프랑스 육군사관학교(생시르)를 모델로 출발했다. 같은 해에 영국에서도 왕립군사대학이 설립됐고 이보다 3년 앞서 세워진 왕립육군사관학교와 별도로 운영되다가 1947년에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로 통합됐다. '생시르'와 '샌드허스트'도 웨스트포인트와 마찬가지로 육군사관학교가 있는 도시 이름이다.

우리나라 육사가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의 육사들에 비해 140년 이상 늦었지만, 신라 시대의 '화랑'에 빗대 '화랑대'라는 별칭을 갖고 있어 그 정신적 연원은 짧다고 할 수 없다. 화랑은 국가적 인재를 선발한다는 취지에 맞게 김유신, 무열왕, 사다함 등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육사 역시 논란이 따르긴 하지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세 명의 대통령들을 배출했으며 당시 육사 출신이 공공 기관이나 민간 기업에 특채되며 득세하는 시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육사 생도들이 선망의 대상이 돼 정복을 입고 외출하면 시선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육사는 '군부 정권'의 그늘을 드리웠다고 비판받으면서도 엘리트 장교의 산실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육사 생도가 10대 여중생과 성매매를 한 혐의로 구속돼 충격을 주고 있다. 얼마 전 일어난 태국 봉사 활동 중 무단이탈 및 음주'마사지 사건, 5월의 여생도 성폭행 사건에 뒤이은 것이어서 육사와 생도들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웨스트포인트의 '의무'명예'조국'이라는 교훈에 비견되는 '지(智)'인(仁)'용(勇)'이라는 교훈에 크게 동떨어져 이만저만 먹칠이 아니다.

육사가 생도들의 인성 교육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와중에 빚어진 일이어서 더 실망스럽다. 금주'금연'금혼의 3금 제도 등 육사의 지나치게 엄격한 규정을 시대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데 이를 포함해 좀 더 근본적인 성찰과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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