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지금 수성구 엄마들은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아이들 방문 학습지 선생님과 함께 온 상담부장이라는 분이 아내에게 한 말이다. 아마 상담부장은 수성구 엄마들에게는 "지금 강남 엄마들은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하고 말을 할 것이다. 이것은 사교육 업체에서 제안하는 사교육을 안 하면 우리 아이가 뒤처질 것만 같다는 막연한 공포를 유발하는 화법인데, 사람의 마음을 돌려 소비하게 만드는 마케팅의 기법으로는 매우 효과적인 기법이다.(내가 수성구에 있는 학교에 근무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우리 집도 아마 학습지 몇 개를 더 받아 봤을 것이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공포라는 감정은 관자놀이 안쪽에 있는 편도체라는 감정 중추에서 관장하는데, 편도체에서의 판단은 대뇌에서 이루어지는 이성적인 판단을 압도한다. 바퀴벌레를 보았을 때, 내가 밟아 죽일 수 있을 만큼 작고, 내 살을 뜯어 먹거나 독을 쏘지 않을 것이라는 이성적 판단에 앞서 비명부터 지르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사교육 업체나 기업들에서 공포를 이용하는 이유는 매일 수도 없이 많은 제품과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이성적으로 설득해서는 두드러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립감과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공포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제품의 장점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요즘 ○○ 모르면 왕따예요'라는 광고 카피를 강조하는 과자 광고가 훨씬 더 큰 설득력을 가진다. 이것은 예전에 '○○ 모르면 간첩'이라고 하던 것을 변형시킨 것으로, '간첩'보다 '왕따'가 더 무서운 것이라는 시대상이 반영되었을 뿐 공포를 이용하는 원리에는 변함이 없다. 아이들은 집에 가서 부모님을 설득할 때 그런 공포를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핸드폰 사 주면 공부에 방해될 것이 뻔해서 안 사 주는 것인데, 아이가 "핸드폰 없는 애는 반에 저밖에 없어요"라고 하면 부모들은 이성적 판단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 화요일 대학 입시 제도에 대한 정부의 개편안이 나왔다.(개인적으로는 내년 EBS 교재 집필을 하고 있는지라 국어 A·B형이 없어져서 집필 부담이 반으로 줄기를 학수고대했었다.) 정부의 발표가 나오기 전에 이미 사교육계에서는 이런저런 말이 나왔는데, 평가원에서 수능을 담당하고 있는 선배가 아이 학원으로부터 '수능 체제가 앞으로 이렇게 변하는데, 이러이러한 대비를 하지 않으면 늦게 된다'는 상담을 받았다는 우스개도 있다. 정부에서는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입시 제도와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실제에서는 제도 변화 자체가 공포를 만들어 내는 소재가 되어 사교육 시장의 좋은 홍보 거리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사람들이 아이 교육 문제만 나오면 귀가 얇아지고, 공포를 조장하는 화법에 너무 쉽게 설득된다는 점이다.
민송기<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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