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직원이 배가 아파 나뒹구는데, 의사는 몇 마디 묻고 간 이후 1시간 넘도록 아무런 조치가 없습니다. 그러더니 다른 의사가 와서 똑같은 질문만 하고 갔습니다. 혈압을 재고 피 뽑는 것 외에는 별다른 검사도 하지 않고요. 잘 아시는 교수님께 부탁 좀 해주세요."
며칠 전 밤 10시 지인이 이런 내용으로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 대학병원 서너 명의 교수에게 전화를 한 끝에 겨우 한 교수와 연락이 닿았고, 그 사실을 지인에게 알려줘 안심을 시켰다.
의료 분야 취재를 오래 담당했던 필자에겐 이런 '환자 민원'이 적지 않다. 취재 현장을 떠난 지 몇 년 지났고 야간이나 휴일에 부탁 전화를 한다는 것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애타는 환자의 처지를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일. 그래서 눈 질끈 감고 전화번호를 누르곤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보호자 입장으로 지역의 대학병원을 드나들면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한 대학병원에서는 젊은 간호사들이 어르신 환자를 거의 반말로 대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물론 친근감의 표현이라는 변명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환자에게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는지 물어본 적 있을까? 수술을 앞두고 잔뜩 겁먹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수술 부작용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연신 손가락으로 '볼펜 돌리기'를 하는 의사도 봤다. 대학병원 응급센터에선 '무작정 대기'로 환자를 짜증 나게 하는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불러도 대답 없고, 똑 부러지게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다. 검사를 해야 한다며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해놓고 몇 시간 동안 무작정 기다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대부분 환자나 보호자들은 대놓고 화를 내지 못한다. 다른 병원으로 옮길 생각이 없다면 참는 것이 능사라는 일종의 '생존 본능'이다.
야간이나 휴일에 대학병원에서 제대로 진료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친한 대학병원 교수의 말은 우스갯소리 같지만 웃지 못할 현실을 풍자한다. "아프거나 다칠 때는 날을 잘 잡아야 합니다. 야간이나 휴일은 무조건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대학병원 응급센터에서 전공의 아닌 전문의가 진료를 하고, 휴일에 대학병원이 외래 진료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인력과 돈을 더 들이면 가능하다. 낮은 의료 수가, 부족한 인력 등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환자가 양질의 진료를 기대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인가? 이 또한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돈 냄새'를 향해 달려들어도 의료는 돈보다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느리지만 변화는 있다. 최근 삼성서울병원이 100억 원을 투자해 응급센터 개선에 나섰다. 이 병원은 7월 중순부터 전공의 위주로 운영되던 응급센터를 전문의 중심으로 바꿨다.(물론 환자의 추가 부담은 없다고 한다) 모든 환자에게 1시간 내 전문의가 초기 진단을 하고 치료 계획을 세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1차로 맡고, 세부 진단이 필요하면 내과'외과 등의 전문의가 진료한다. 또 응급센터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환자별 진도(진료 및 검사 순서, 검사 시간, 입'퇴원 예상 시간 등)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토요일 외래 진료를 하는 상급 종합병원들도 늘고 있다. 지난달 삼성서울병원은 토요일 외래 진료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의료 전문 매체인 데일리메디가 지난달 44개 상급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1개 병원이 토요일 진료를 시행 중이다. 여기에 포함된 대구의 대학병원은 대구가톨릭대병원이 유일하다. 대구가톨릭대병원 관계자는 "토요일 환자는 평일의 절반 수준도 안 된다. 적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중단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지만 환자들의 요구가 많아 토요일 진료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시는 의료관광 활성화, 메디시티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도 '글로벌 헬스케어'를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정해 의료관광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초일류 병원들은 이런 식으로 돈을 벌지 않는다. 이들 병원은 '의료관광'의 개념조차 없다. 의료진이 '진료'연구'교육'이라는 의료의 기본에 충실하다 보니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전 세계에서 환자들이 제 발로 찾게 된 것이다.
의료관광 활성화와 의료산업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시민들이 제대로 치료받고 의사는 자긍심을 갖고 진료할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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