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오서산

오서산

장철문(1966~ )

누가 이 커다란 지구를 이곳에 옮겨왔을까

파도는

그때 그 출렁임이 아직 가시지 않은 걸 거라

아무렴,

이 커다란 지구를

물잔 옮기듯 그렇게 옮길 수는 없었을 거라

까마귀는 산마루 넓은 줄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살러 왔을까

억새밭 드넓고 바람길 길게 휘어져

활강하기 좋은 산,

오서산(烏捿山)

야옹야옹 괭이갈매기 아들 부르는 소리 들으며

까옥까옥 까마귀 딸 키우는 산

살아야지

머리칼 날려 이마에 땀 씻기니,

미움은 미움대로 바라봐야지

오늘까지 지구가 둥글다는 것 알지 못했거니

오늘 오서산에 와서 배운다

둥글다는 건

공 같다는 것이 아니라

툭,

트였다는 것

-시집『무릎 위의 자작나무』(창비, 2008)

시는 반대말을 찾는 구석이 있다. 어둠에서는 밝음을 지향하고, 눈물에서는 웃음을 생각하고, 억압에서는 해방을 생각한다. 밝음에서는 어둠을 염려하고, 웃음에서는 눈물을 기억하고, 자유로울 때는 억압을 되새긴다. 그러나, 대체로는, 낮고 외롭고 쓸쓸하고 서러운 곳에서 그 반대쪽으로 촉수를 내밀어가는 버릇을 지녔다.

이 시도 마찬가지다. 일견, 아주 다감한 듯 보이는 시지만 속내는 그렇지가 않다. 세상에서 아들 딸 키우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실상은 모나고, 막막한 삶의 언저리에 올라 있으면서 애써 둥글고 탁 트인 곳이라 고집하고 있다.

시인이 이 시를 쓴 지가 꽤 흘렀으므로 지금쯤은 삶속에서 좀은 둥글고, 얼마간은 트인 맛을 느끼며 살 것이라 믿는다. 삶은 간절한 쪽으로 옮겨가는 버릇 또한 있으므로.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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