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대구10월사건(대구10'1사건), 1957년 가짜 이강석 사건, 1974년 고교 입시 부정과 교육감 자살, 1991년 개구리 소년 실종, 1995년 상인동 지하철 공사현장 가스폭발, 2003년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 참사,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매일신문 창간 이래 대구경북에서 발생했던 굵직한 뉴스들입니다. 대형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신문사에서 가장 바쁜 부서는 사회부입니다. 그중에서도 경찰팀 기자들은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습니다.
석간신문의 특성상 경찰기자들은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입니다. 오전 6시 30분까지 경찰서에 출근해 밤새 일어난 사건사고를 빠짐없이 확인합니다. 그런 다음 팀장인 시경 캡에게 보고합니다. 전날 폭음을 하고 늦게 출근했다가 캡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기도 합니다.
늦어도 오전 10시까지는 마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취재원에게 전화 돌리고, 기사 쓰며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경찰기자에게 오전 8~9시는 '헤어진 첫사랑이 돌아와도 반갑지 않을 시간'입니다. 주말도, 밤낮도 없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야 하니까요.
수습기자 때는 더합니다. 경찰서에 출근 도장을 찍기 전에 지구대를 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입사한 이화섭 기자는 수습 시절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지구대 3, 4곳을 돌며 밤새 사건사고를 체크하고 경찰서에 돌아오는 시간이 6시 30분쯤입니다.
선배들로부터 온갖 취재 지시를 받고, 기사 못 쓴다고 욕먹는 것은 일상적이죠. 퇴근은 보통 밤 9, 10시. 술자리까지 이어지면 자정을 넘기는 것은 예삿일입니다. 오죽하면 수(修)습기자를 수(獸)습기자라고 부르겠습니까? 하지만 이 정도면 경찰기자로서 지극히 정상적 생활입니다.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참사를 기억하시나요? 2년 차 신참 기자였던 저는 중앙로역을 맡았습니다. 밤낮으로 중앙로역에 붙어 있었죠.
현장 취재를 위해 오후 4시쯤 경찰 저지선을 뚫고 중앙로역 지하 3층에 내려갔을 때 눈에 들어왔던, 엄청난 화마에 전동차 내부가 폐허가 된 모습, 엎드린 채 대피하다가 화마에 휩싸여 고스란히 재가 된 승객, 신발을 통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사고 첫째 주 퇴근 시간은 새벽 2, 3시였습니다. 둘째 주에 접어들면서 퇴근 시간도 자정쯤으로 빨라졌습니다. 셋째 주가 되면서 밤 10시, 한 달이 지나면서 오후 8, 9시쯤 퇴근을 했습니다. 사생활을 완전히 포기해야 했었죠.
현재 매일신문 경찰팀 막내들은 3년 차 서광호 기자, 2년 차 이화섭'신선화 기자입니다.
서 기자는 최근 환경 분야에 그야말로 꽂혔습니다. 대구의 대기, 금호강 오염, 소음 등등 기사화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개인적으로 환경 분야에 관심이 많다고 하네요.
이웃사랑을 맡고 있는 이 기자는 따뜻한 심성이 기사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홍일점인 신 기자는 딱 부러지는 성격이지만 자칭 '경찰팀의 귀염둥이'라고 자부한답니다. 이들 막내들의 땀과 열정이 특종을 만들고 지면을 알차게 만듭니다.
사진기자를 빼놓을 수 없네요. 사진은 순간 포착이 제일 중요합니다. 화재 사건이 발생하면 불타는 장면을 찍어야 제대로 된 사진입니다. 불이 꺼진 후에 백 번 찍어도 쓸모없는 사진이 됩니다. 이 때문에 신문사에서도 사진기자들에게는 나름대로의 특권을 줍니다. 바로 회사 로고가 붙은 차량을 제공하는 것이죠. 독자들도 대구시내에서 매일신문 로고가 붙은 승용차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 차량을 볼 때마다 '사진기자가 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거의 정답입니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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