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실천하는 선비정신 心山 김창숙] ⑦일제에 붙잡혀 귀국하다

망명 9년째 병상서 밀고당해…"대세 못읽는 日 패망" 판사에 일갈

◆피검

나석주 의거 이듬해 2월 심산은 상해의 공공조계에 있는 공제병원에 입원했다. 치질 때문이었다. 몇 달 전 1차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결과가 좋지 않아 다시 입원한 것이었다. 수술은 매번 결과가 좋지 않아 3차례나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치질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이번에는 또 만성맹장염 증세가 나타났다. 퇴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의사는 원기가 회복되면 4차 수술을 하자고 했다. 며칠 전에는 국내로 보낸 아들 환기가 왜경에게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식 잃은 슬픔에 병세는 더욱 악화됐고 꼼짝없이 병상을 지키는 신세가 됐다.

심산이 입원한 병원은 공공조계에 있어 일본의 밀정이 엿볼 염려가 컸다. 심산도 이를 우려해 입원사실을 극비에 부쳤다. 석오 백범 김두봉 정세호 김원봉 정도만 알았다. 문병 오는 이도 이들이 전부였다. 그런 어느날 유세백과 박겸 두 사람이 면회를 왔다. 이들은 심산이 광주에서 중국어와 영어 교습을 시켜 준 청년들이었다. 이문치의 배신 이후 상해에 돌아와서도 몇 달간 함께 지낸 사이였다. 그러나 상해의 교포들은 이 둘을 일본 밀정으로 의심했다. 물증은 없었지만 심산도 소문을 듣고 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둘 때문에 찜찜했다. 당장 퇴원해 버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비 300원이 밀려 있었다. 그냥 퇴원해 외국인에게 신의를 잃기가 싫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자신의 은혜를 두터이 받은 자들이므로 별일이야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도 어두워졌다. 내일 날이 밝으면 병원비를 청산하고 퇴원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날이 밝았다. 밤새워 하던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다. 영국 경찰 한 명이 일본총영사관의 형사 6명을 데리고 병실에 들어오더니 병상에 누워있는 그에게 영국 총영사가 서명한 체포장을 제시했다. 곧바로 일본영사관내 감옥에 감금시켰다.

심산이 조국 독립을 위해 망명한지 9년째였다. 군소당파를 없애고 통일된 합의단체를 결성, 단결의 희망을 모색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불과 몇 달전에는 임시 의정원을 개편, 이동녕이 의장, 심산이 부의장으로 선출됐다. 희망의 싹을 키우려고 하던 시점에 영어의 몸이 된 것이다. 조국독립의 꿈도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절망의 시기 심산의 진가는 두드러진다.

◆귀국

일경은 며칠간 아무 심문도 하지 않았다. 나가사키를 거쳐 부산으로 압송했다. 부산에는 경북경찰부 형사 최석현 등과 일본인 형사 오카다가 대기하고 있었다. 부산서부터는 수갑을 채웠다. 바로 대구경찰서로 압송됐다. 다음날부터 심문이 시작됐다. 형구를 야단스레 벌려놓고 고문을 가했다. 심산이 태연한 자세로 고문하는 경찰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고문을 해서 정보를 얻어내려느냐. 나는 비록 고문으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곤 종이와 붓을 달라고 하여 시 한 수를 적어 주었다.

'조국의 광복을 도모한지 십년에/ 가정도 생명도 돌아보지 않았노라/ 살아온 나날이 백일처럼 분명하거늘/ 야단스레 고문할 필요가 있겠는가' 일본인 고등과장이 번역을 시켜 읽어본 다음 갑자기 심산에게 경례를 했다. '나는 비록 일본인이지만 선생의 대의 앞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선생은 이미 가족까지도 모두 팽개치셨으니 고문으로는 지조를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겠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알고자 할 때 고문을 가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니 그것은 모면하기 어렵다.'

이후 그들은 심산을 선생이라 부르고 고문도 조금은 덜했다. 그러나 상해 병원에서 체포돼 감옥에 들어와 심문을 받은 이후로 병세는 더욱 악화됐다. 감옥의 의사가 하루 걸러 와서 진찰도 하고 약을 주고 했지만 아무 효험이 없었다. 죽었다가 깨어나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이때의 참담한 심정을 담은 옥중 시가 있다.

'감옥살이 답답하여 잠 못 이룰 제/ 벚꽃은 창살가에 무르익었네/ 애석할 손 봄날은 며칠이나 남았는고/ 가여울 손 병든 몸 여러 해를 누워있네/ 어리석은 마음은 매양 중국으로 넘어가고/ 돌아오는 꿈은 고향에서 놀라 깨네/ 이중삼중 쳐 놓은 그물 가소롭긴 하지만/ 어떻게 병든 이 몸 비선을 타고 나갈 수 있을꼬'

◆예심판사와의 토론

한 해 남짓하여 예심이 끝났다. 예심판사 하세카와가 심산에게 토론을 해보자고 제의했다. 한인 독립 운동가를 많이 봐 왔지만 심산처럼 굳세고 의연하여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며 정견을 논해 보자는 것이었다. 심산은 이미 예심에서 모두 진술했는데 되풀이할 이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예심판사는 '선생이 독립운동을 한 것은 장하다 하겠지만 조선이 무슨 힘이 있어 독립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심산을 건드렸다. 심산이 말했다. '일본 정치인은 눈 구멍이 작아 천하의 대세를 바로 보지 못해 경거망동하고 있다. 망동하는 자는 반드시 패망하는 법이다. 나는 우리 한국이 반드시 독립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이 힘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심산은 이어 일본의 정치인들을 옹졸하다고 질책했다. '일본이 한국을 삼키고 중국을 삼키고자 하지만 이는 천하대세를 알지 못하고 망동하는 것이다. 만일 천하대세를 아는 호걸이 일본의 정국을 담당한다면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중국을 삼키려는 야심을 뉘우쳐 한일, 중일간의 강제조약을 취소하고 평등 호혜의 통상 협약을 체결할 것이다. 그러면 동양에 평화가 수립되고 일본은 그 맹주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무한한 욕심을 채우고자 침략과 망동을 계속한다면 한국과 중국이 힘을 합해 일본에 대항할 뿐 아니라 천하만국이 일본의 죄를 물어 군대를 동원할 것이다. 그러니 어찌 일본이 패망하지 않겠는가.' 조용히 정견을 논해보자던 예심판사가 화를 참지 못했다. '선생은 감히 일본에 대정치가가 없어 나라가 망한다고 말하는 거요?'

예심이 끝나고서야 면회가 이뤄졌다. 경찰서와 법정 바깥에서 노심초사하던 가족들과 십 년 만에 만났다. 심산의 부인이 울며 집안일을 어찌할 것인가 걱정했다. 아내로서 또 한 가정의 살림을 맡은 주부로서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러나 심산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내가 집안일을 잊은 지 10년이다. 당신은 나에게 물을 것이 없다.' 둘째 아들 찬기에게는 어머니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학업에 힘쓰라고 일렀다. 조국 독립은 요원하고 그 자신 언제 풀려날지 알 수 없는 처지에 더 이상 달리 할 말이 있을까만 가족의 입장에서야 얼마나 애닯고 서운했을까. 조국 독립에 모든 것을 바친 혁명가의 가슴속에 가족에 대한 걱정은 나라 걱정 다음 차례였다.

서영관 객원기자 seotin123@naver.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