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호 교수의 한일 이야기] 반북, 한류, 혐한

북한은 1998년 제1차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2002년 일본인 납치를 인정했다. 그 이후 일본에서는 북한 때리기와 재일 조선인에 대한 배척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2006년 핵실험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제재는 이를 가속화시켰다.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조총련 인사와 시설에 대한 경찰의 부당한 수사 등이 빈발했다.

여기에서 시기를 눈여겨봐야 한다. 1998년 김대중정부는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했으며, 2002년에는 한'일 공동 월드컵을 개최했다. 다음해 NHK가 겨울연가를 방송했다. 2006년경에는 중년층 여성 중심의 한류가 남성과 젊은이로 확산되었다. 2000년대 전반 일본에는 한국 관련 정보가 늘어나고 한국에 대한 친근감도 높아졌다. 동시에

유례없는 북한 때리기와 재일 조선인에 대한 배척 분위기도 강해졌다. 이러한 한류와 반북한 정서의 공존 속에는 혐한(嫌韓)이란 또 하나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2005년에는 독도 문제와 역사 인식 문제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라는 만화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6년 일본이 대북 제재 조치를 취하는 가운데 한국은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경제협력을 계속했다. 이에 대해 일본 보수 언론은 한국 정부를 친북 좌익이라며 비난했다. 일본 보수 정치가와 보수 언론이 북한과 재일 조선인을 '반일'로 매도하는 것과, '친북적'인 노무현정부를 '반일'로 인식하고 비난하는 것은 같은 것이었다.

그 후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삼가고, 보수적인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한일 관계는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북한이 2009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하고,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나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졌다. 남북 관계의 악화는 한일 관계를 긴밀하게 하는 듯했다.

2011년에는 한류 드라마를 방송하는 일본의 TV 방송국에 항의 시위대가 몰려왔다. 이듬해 재일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도쿄 오오쿠보 지역에서 한국과 북한을 모욕하고 위협하는 추악한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시위가 일어났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황의 사죄를 촉구하는 발언은 일본의 반발을 샀다.

한국과 북한은 다르기 때문에 일본의 한국과 북한에 대한 감정도 달라야 한다. 그러나 한국과 북한에 대한 일본의 감정은 '반일'로 수렴된다.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중국도 반일로 낙인찍는다. 미군 기지 반환을 요구하는 오키나와 주민들도 반일'좌익으로 공격받는다. 최근 어느 지방자치단체가 원폭 만화 의 열람을 제한하려 했다. 천황 비판과 아시아 침략, 학살 등의 묘사가 반일, 좌익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1년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한국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소극적 자세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과 고등법원에서도 강제징용 등에 대해 보상을 촉구하는 판결이 연이어 나왔다. 그러자 일본 보수 언론은 한국 법원의 판결에 반발하고, 진보 언론도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했다. 일본의 보수 정치가와 언론, 헤이트 스피치 집단들은 반일과 좌익은 일본의 명예를 해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일본의 불명예로 왜곡하는 것은 애국이 아니라 배타주의다.

한국은 어떨까. 1970년대 한국 정부는 반한과 친북을 양산했다.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정치에는 색깔론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진보 진영에 대해 마구잡이로 종북이라는 낙인을 찍고, 내란 음모로 과대 포장하는 점은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일과 좌익 낙인찍기와 비슷하다. 또 미래를 위해 과거의 국가 폭력과 인권침해의 역사를 비판하는 것조차도 종북으로 매도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일, 좌익 낙인찍기와 유사하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아의식이 약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 글은 한국이나 일본이 '매한가지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남의 행동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히로시마시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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