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立冬)이 지났건만 왠지 가을을 그냥 보내기는 싫다. 겨울 속으로 사라져 가는 가을을 배웅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내로라하는 명산과 관광지에서는 가을 배웅 잔치를 벌이고 있다. 문경도 요즘 한바탕 잔치 분위기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 아직도 가을은 이곳에 눌러앉아 있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곳 1위
문경새재도립공원의 시작은 북적이는 인파로 시작된다. '와~사람 많다. 유명하긴 유명한 곳이구나' 하는 감탄이 먼저 나온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서 1위'. 입구에 나부끼는 플래카드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눈앞에 그림 같은 단풍길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옛 성곽길이 펼쳐진다. 단순히 빨갛고 노란 단풍이 아니다. 문경새재 옛 성곽길과 함께 어우러진 이곳은 현재가 아닌 조선시대의 한 장면 같다. 가을을 대표하는 산수화 같다. 이쪽을 봐도 저쪽을 봐도 한 곳도 서운한 곳이 없다.
보기 드문 흙길이다. 그래서 맨발로 걷는 사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옆으로는 계곡과 수로가 있어 언제든지 손발을 닦을 수 있다. 단풍길 옆 수로에는 은빛 억새가 반짝인다. 이처럼 수려한 자연경관 덕에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서 1위를 차지했나보다. 그뿐 아니라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과 명승32호로도 지정됐다.
문경새재에 반해버린 발걸음으로 15분쯤 걷다 보면 제1관문이 나온다. 제1관문인 주흘관을 시작으로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으로 이어진다. 전체 길이는 6.5㎞. 일정이 빠듯하다면 1관문이나 2관문까지만 걸어도 좋다. 다행히 입구부터 주흘관까지는 전기자동차가 운행한다. 이 밖에도 자연생태전시관, 사계절썰매장, 새재스머프마을, 옛길박물관 등 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들 중에서 옛길박물관은 과거길, 여행길 등 조선시대 길과 얽힌 문화를 재조명해 놓았다.
◆조선시대 한양을 그대로 재현
1708년에 축성된 제1관문 주흘관을 지나면 왼편에 화려한 궁궐과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나타난다.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 문경시가 72억원을 들여 예전의 마을을 토대로 하여 지은 곳이다. '태조왕건' '대조영' '대왕세종' 등 내로라하는 사극은 죄다 이곳에서 촬영했다.
마을 한가운데는 서울의 광화문과 경복궁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7만㎡ 규모로 광화문, 근정문,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천추전 등 A구역과 궐내각사, 동궁 등 B구역, 양반촌의 C구역, 초가촌 등 모두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궁궐의 경우 실제의 70% 정도 크기. 사극에서 주인공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작게 만들었단다.
양반촌과 초가촌은 궁궐 등에 비해 화려하진 않지만 정답다. 기와며 마루, 담, 그리고 방안의 가재도구까지 실제 살림을 해도 괜찮을 정도로 정교하다. 운이 좋으면 실제 촬영 장면을 볼 수도 있다. 단체관광객들이 많아서 문화해설사들의 설명을 공짜(?)로 들을 수 있다.
이곳에서 약 2.5㎞를 더 걸어가면 1594년에 축성한 제2관문 조곡관이 나온다. 가는 길목에는 고려와 조선시대 숙식을 제공하던 국영여관인 조령원터, 조선 후기에 세워진 희귀한 산불됴심비, 조선시대 경상관찰사가 업무 인수인계를 하던 교귀정 등이 있다.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다 보니 제3관문까지 가는 3.5㎞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지막 관문인 조령관은 1708년에 축성됐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충청북도 괴산 땅이다.
등산 코스도 잘 개발돼 있다. 제1관문, 혜국사, 대궐터, 주흘산, 동문, 북문, 마패봉, 제3관문에 이르는 코스(8시간 40분 정도 소요)와 제1관문, 혜국사, 전좌문, 주흘산, 조곡골을 거쳐 다시 제1관문으로 내려오는 코스(약 5시간 소요)를 선택할 수 있다.
◆석탄박물관
석탄.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겨울을 대표하는 상품이었다. 사람들의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었고 기차를 움직였으며 근대화의 원천으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요즘 신세는 처량하다. 젊은이들에게는 낯선 단어이지만 문경석탄박물관에서는 과거 석탄에 대한 따스한 기억들을 되새길 수 있다.
전시관 로비에 설치된 대형 설치물에는 탄광산업이 왕성할 때 촬영했던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2층으로 올라가면 연탄을 만드는 과정과 석탄산업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석탄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석탄의 기원, 광물, 화석, 석탄의 탄생과 산업의 역사, 연탄 등이 전시돼 있다. 3층에는 탄광사무실, 운반'조명'굴진'탄광재해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야외 전시장에는 대형 광산 장비가 전시돼 있다. 실제 광부들이 살았던 탄광촌 가정집과 구멍가게, 정육점, 선술집 등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세트장마다 현지 주민들이 직접 녹음한 대화를 들을 수 있다. 한쪽에 마련된 갱도 전시장에서는 은성광업소가 사용했던 실제 갱도를 활용해 갱도 체험을 할 수 있다.
석탄박물관 뒤편에 있는 가은촬영장도 볼만하다. '천추태후' '연개소문' '자명고' 등 드라마를 촬영한 곳이다. 문경새재도립공원 내 오픈 세트장이 주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이곳은 삼국시대가 배경으로 훨씬 연식이 오래됐다. 1촬영장에는 평양성과 고구려궁, 고구려와 신라마을이 있고 2촬영장에는 안시성과 성내마을이 있다. 드라마 연개소문의 시작을 알렸던 안시성 전투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3촬영장에는 요동성과 성내마을 세트장이 있다. 운영시간은 오후 4시 30분까지다. 첩첩산중을 가르고 계곡을 가르는 문경 철로자전거도 빠뜨리지 말아야 할 체험이다. 운행 구간은 진남역에서 불정역, 불정역에서 주평 방면, 가은역에서 먹뱅이역이다. 왕복 거리는 4㎞ 내외다.
※문경새재=영주 죽령, 영동 추풍령과 함께 조선시대 3대 고갯길. 부산 동래에서 한양까지 추풍령을 넘으면 보름, 죽령을 넘으면 열엿새가 걸렸다고 한다. 문경새재는 열나흘 정도면 한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에게 지름길로 애용됐다. 또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낙방하고 죽령은 대나무 미끄러지듯 낙방한다는 징크스가 있어 문경새재의 인기를 높였다. 새재란 이름은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릿재(이화령) 사이 등 그 의미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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