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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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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꽤 위험한 곳이다. 누가 조사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사고를 가장 많이 당하는 장소가 자기 집이라고 한다. 심하게 다친 적은 없지만 나도 그랬다. 한 번은 자다가 당한 봉변이었다. 내 침대 머리맡 선반에 쌓아둔 소설책 더미가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얼굴을 감싸 쥐고 등을 켜보니까 잠자리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범인들이 밝혀졌다.

악동으로 알려진 소설가 이안 뱅크스, 칠레의 저항 문인 루이스 세풀베다, 평생을 반항아처럼 살다 간 존 파울즈, 은둔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삐딱이 폴 오스터, 유태인 아모스 오즈, 그리고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까지 여러 소설가들이 나를 공격했다. 크리스틴 오르방, 미셸 우에벡, 앙리 프레드릭 블랑, 짐 크레이스, 엠마누엘 카레르, 그리고 마리 다리외세크, 아멜리 노통브, 이 사람들도 무서웠다. 집에 책이 늘어나서 서재에는 책상을 가운데 두고 문을 뺀 네 벽면 전체를 책장으로 둘러쌌다.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도서관처럼 중간에 책장을 놓았다. 책들은 결국 서재를 벗어나 온 집을 삼켜갔다.

그래도 나는 잠자는 방에까지 책을 두기는 싫었다. 침실에서는 그냥 머리를 비우고 잠만 자고 싶었다. 그런데 딱 한 출판사가 펴낸 외국 소설책들만은 침대로 가지고 왔다. 단단한 사철식 양장본과 개성 넘치는 표지 도안, 나는 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는 물건 자체를 좋아했다. 그렇게 특별대우했던 내 잘못이었다. 그 출판사 사장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다. 어여쁜 외모에 홀려서 그 모난 성질을 무시하고 잠자리에 끌어들인 내가 바보였다.

또 다른 사건은 그림에 깔린 일이다. 그 작품은 금속 액자 때문에 꽤나 무거워서 못을 여러 개 박아야 했다. 벽에 못 자국을 내기 싫었던 나는 그림을 문갑 위에 기대어 두었다. 어느 날 아침, 샤워하고 옷을 꺼내 입으려고 문갑을 여는 순간 그 그림이 쓰러져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만하길 다행이었다. 만약 내가 벌거벗은 변사체로 발견된다면, 그리고 그 원인이 밝혀진다면 처음에는 웃음거리가 되었을 거다. 또 한편에서는 내 삶이 미술과 함께한 인생이라고 포장해줄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예술이 찬란할지라도 내 삶의 처음과 끝을 예술에 종속시키긴 싫다.

두 명의 시인, 이백과 릴케의 죽음을 둘러싼 설화로 대표되는 예술가의 낭만적인 정체성을 내가 굳이 따라할 이유가 있을까. 남들은 취미로 대하는 예술이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일이다. 고등학교 때 읽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수영장 크기의 푸딩 덩어리가 있고 그 속에 사람이 빠지면 그는 과연 헤쳐 나올 수 있을까'란 글 내용이 생각난다. 아무리 좋은 것도 그 속에 과할 정도로 파묻혀 있으면 그것은 더 이상 좋은 것이 아니다.

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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