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돌반지·치아… "金은 부담" 비싼 몸값, 제 발등 찍어

치솟던 금값, 속절없는 하락…저무는 '황금시대' 변화상

금값이 크게 하락했지만 수요는 늘지 않고 있어 귀금속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금값이 크게 하락했지만 수요는 늘지 않고 있어 귀금속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골드바 카드를 판매하는 귀금속 자판기가 대구 시내에도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김태형기자
골드바 카드를 판매하는 귀금속 자판기가 대구 시내에도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김태형기자

비만이 사회문제화되면서 체중을 감량하면 금을 주는 나라가 등장했다. 아랍의 부자나라, 두바이다. 지난 7월부터 한 달 동안 '황금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진행, 2㎏ 이상 살을 빼면 순금을 줬다. 1만2천여 명의 시민이 참가한 이 행사에서는 26㎏을 줄인 우승자가 순금 63g(16.8돈'약 294만원)을 받는 등 2천600여 명이 노다지를 캤다. 하지만 두바이 시민들은 요즘 기분이 언짢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금값이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시장의 왕'으로 군림해온 금의 몰락은 우리 일상생활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속절없는 하락, 저무는 '황금시대'

몇 년 동안 거침없이 질주하던 금값은 올해 폭락을 시작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 금값은 3.75g(1돈)에 한때 30만원에 육박했지만 요즘은 17만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국제 금값의 경우 26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12월 인도분 금 선물가격이 1천241.40달러를 기록했다. 11월에만 6.2% 하락했으며 올해 초와 비교하면 무려 26%나 떨어졌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금값은 1981년 이후 연간 낙폭이 최대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금값의 추가 하락을 점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금값이 연말까지 1천125달러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고,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이달 22일 "금값이 내년에 15% 떨어져 온스당 1천50달러 선에 머무를 것"이라고 밝혔다. 2001년 이후 한 번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인 적이 없는 금값이 이처럼 속절없이 하락하면서 '황금시대가 저물었다'는 표현도 무리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금값 하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금값의 고공 행진을 지탱하던 미국 양적완화 정책의 축소가 임박했고, 최근 이란 핵 협상 타결로 중동지역 정정 불안이 일부 해소되면서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방준비제도가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면 달러화의 가치가 높아지고, 달러화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금을 보유하려는 심리는 약해지기 마련이다.

금값이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영향을 이미 반영해 크게 동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금 투자는 이제 끝물'이라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대구시내 귀금속 상가에는 금값이 내렸어도 손님 발길이 늘지 않고 있다. 10월과 11월이 결혼식을 앞둔 수요가 가장 많을 때이지만 계속되는 불경기 탓으로 풀이된다.

대구 '국제보석' 류병완 대표는 "금값이 하락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비싸다는 인식이 많아 더 내리면 연락해달라는 전화만 있다"며 "금열쇠 등을 선물하는 사은회 같은 행사가 많은 12월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또 '한국금거래소' 대구지점 관계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금값이 내리다 보니 문의 자체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대구의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1㎏짜리 골드바 구입 고객은 전무하다"고 전했다.

◆돌반지 실종은 갈수록 확산

최근 몇 년 동안 금값이 크게 오르면서 우리 사회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돌반지 실종'이다. 지난 7월 둘째 아이의 돌잔치를 열었던 전연희 씨는 8개의 돌반지를 선물로 받았다. 2011년 첫째 아이의 돌잔치 때 11개보다 3개 적었다. 전 씨는 "어차피 시댁, 친정 식구들만 반지를 선물하는 추세이고, 이제는 친척들도 현금으로 준다"며 "금값이 다시 오를지도 모르고 해서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반지를 장롱 속에 보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30만원을 호가하던 1돈짜리 돌반지는 27일 현재 22만3천원 선까지 가격이 내려왔다. 반 돈(1.875g)짜리 반지는 11만6천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수요는 거의 없다는 게 귀금속 상가들의 하소연이다. 금값이 폭등했을 때 등장했던 1g짜리 반지 역시 인기가 많이 줄었다. 소비자들이 '가격은 부담스럽지 않지만 너무 없어 보인다고 생각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몇 년 전 고급 일식집에서 유행했던 금가루 뿌린 회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일식집 관계자들에 따르면 회 네댓 접시 분량에 쓸 수 있는 금가루 0.25g의 원가는 5만원 정도다. 대구 수성구 ㅅ일식의 조인호 대표는 "최근 대구시내 일식집들이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서비스로 금가루를 준비하는 곳이 거의 없다"며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에는 금가루 대부분을 일본에서 들여온다는 소문이 돌면서 더욱 찾는 손님이 줄었다"고 말했다.

과거 '부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했던 금니 역시 차츰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금값이 치솟으면서 원가 부담이 커지자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 이가 개발됐고, 반짝거리는 금니를 미적 차원에서 기피하는 영향도 있다. 대구보건대학교 이희경 교수는 "금은 녹이 슬지 않는 등 장점이 많아 보철재료로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며 "금값이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금니의 인기는 점점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골드바 수요는 가격 하락에 따른 저가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다. 신한은행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1g당 매매기준율은 4만2천528원으로 1㎏짜리 구입 금액은 부가세를 포함해 4천910만원 수준이다. 올해 1월 2일 6천636만원에 비해서 1천726만원이나 내린 셈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고액 자산가들은 가격 상승 기대뿐 아니라 절세효과와 지하경제 양성화 조치를 피해 갈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골드바 투자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며 "증여, 상속 등을 위해 골드바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금이야 옥이야

금은 예로부터 귀한 금속이라 하여 '귀금속'이라 불렸다. 우리말에도 '금이야, 옥이야' '금쪽같은 내 새끼' 같은 표현들이 많다. 금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투자 상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최근 영국 경제연구소 'CEBR'과 온라인 귀금속 거래회사 '코인인베스트 디렉트'는 금값이 지난 1970년 이후 43년 동안 35배 올랐다고 발표했다. 국제 금값은 2011년 9월 9일 온스당 1천899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은 바 있다.

금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권에서는 권력의 상징이어서 왕족이 아니면 갖기 어려웠다. 실제로 금 실물 소비의 50%가량은 중국과 인도에서 이뤄질 정도로 아시아권에서 인기가 높다. 특히 중국인의 금에 대한 애정은 유별나다. 최근 세계금위원회(WGC)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올해 금 798t을 수입해 715t을 사들인 인도를 제쳤다고 발표했다. 금값이 떨어지면서 부유층의 금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힌두교 축제 '디왈리' 기간 동안 서로 금을 주고받는 풍속이 있는 인도는 경기 둔화로 소비심리가 위축된데다 올해 금 수입관세를 인상하면서 가격이 상승한 여파로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다. WGC는 인도의 올해 금 소비 전망을 지난해보다 10% 낮춘 900t으로 하향조정했다.

최근에는 노란색 황금 못지않게 색깔이 들어 있는 금도 인기다. 화이트골드는 금에다가 파라듐, 니켈을 섞은 것이고 로즈골드는 붉은빛을 띠는 구리를 섞은 것이다. 영남이공대학교 신현준 교수(금속금형설계 전공)는 "금은 성질이 무르고 변하지 않는 성질 덕분에 과거부터 왕실'귀족층 장신구의 중요한 소재로 쓰였다"며 "내년에도 컬러 스톤(색이 있는 보석)의 강세가 유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금은 한의학에서는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 금을 '안신약'(安神藥)이라고 한다. 우황청심환, 공진당 등이 금이 첨가되는 대표적인 약이다. 금가루를 섞은 술, 화장품이나 금가루를 얹은 회가 전혀 근거 없는 마케팅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금과 함께 들어가는 사향 등의 한약재료에 대한 유통 규제가 차츰 강화되면서 금이 든 보약 판매도 점점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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