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단체장이 권력에 놀아나지 않는 법

북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권력(權力)의 허무함이다. 40여 년 동안 2인자로 군림하던 그가 이렇게 급작스럽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할 것으로 내다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부자(父子) 간에도 나누지 못하는 것이 권력'이라는, 무자비한 권력의 속성을 고려하면 머리가 끄덕여지는 일이기도 하다.

권력의 또 다른 속성에 대해 어느 재벌은 이같이 정의한 바 있다. '가까이 가면 타 죽고, 멀어지면 얼어 죽는다.' 권력자 눈 밖에 났다가 끝내 공중분해가 된 재벌, 권력자와 인연을 맺어 급성장한 재벌이 여럿 떠오르는 것을 보면 틀리지 않은 말이다.

비단 권력은 나라'재벌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회사와 가정에도 권력관계가 있고, 학생들 사이에도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요즘 세태다. 권력이 개입하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각 지방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있다. 광역'기초단체장이다. 광역단체장은 말할 것도 없고 기초단체장 역시 공무원 인사권과 각종 공사 인'허가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또 주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빈도도 높아 자연스럽게 더 큰 정치적 꿈을 꾸기에도 안성맞춤인 자리다. 대통령에 도전하는 광역단체장, 광역단체장을 꿈꾸는 기초단체장, 기초단체장에 출마하려는 지방의원들이 장사진을 이루는 것만 봐도 단체장이 가진 권력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광역'기초단체장이 지닌 권력이 막강하다 보니 그 권력으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이들도 속출하는 실정이다. 1995년 이래 민선 기초자치단체장 가운데 전국에서 130명가량이 선거법 위반, 비리 등으로 사법처리됐다. "단체장이 되면 교도소 담장을 걷게 된다"는 것이 농담 아닌 진담이 된 것이다. 그 지역에서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을 가진 단체장에게 그만큼 유혹이 많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권력이 자신을 베는 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권력의 또 다른 속성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허무함, 무자비함,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가까이하기도 멀리하기도 어려움), 무소불위, 양날의 칼 등 권력이 지닌 속성이 여럿이지만 가장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권력은 언젠가는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는 이들이 줄을 잇겠지만 선거에 나섰다 떨어지거나 불출마해 단체장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권력을 내려놓아야 하는 입장에서 섭섭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권력의 속성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마음 상할 일이 아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단체장에 오를 이들은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취하기보단 먼저 권력의 속성부터 깨달아야 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내려놓아야 하는 자리임을 명심하라는 말이다. 이를 머릿속에 심어둔다면 분명히 사고(思考)와 행동이 달라질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권력을 차지하거나 내려놓은 이들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詩) 두 작품이 있다. 먼저 고은 시인의 '그 꽃'으로 매우 짧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마음을 비워야만 세상사가 보인다는 뜻이다. 추운 겨울이 온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는 '논어'(論語)의 한 구절과 일맥상통한다.

또 하나의 시는 정치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 중 한 구절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감방에 가는 정치인들이 자주 입에 올려 그 의미가 바래기도 했으나 언젠가는 반드시 내려놓아야 하는 권력의 속성을 간파한 절창(絶唱)이다.

단체장에서 물러나는 이들은 권력을 놓친 아쉬움보다는 큰 허물 없이 임기를 마친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선거에서 이겨 단체장에 오른 이들은 권력은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지역 발전을 위한 도구란 인식부터 마음에 새겨야 한다. 권력만 좇다 불에 타 죽는 불나방이 될 것인가, 아니면 권력을 지역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잘 활용해 칭찬을 받을 것인가. 권력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가 단체장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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