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경이로움-비스와바 쉼보르스카(폴란드·1923~2012)

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 사람인 걸까요?

나머지 다른 이들 다 제쳐두고 오직 이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필이면 화요일에?

새들의 둥지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비늘이 아닌 피부로 숨을 쉬면서?

잎사귀가 아니라 얼굴의 거죽을 덮어쓰고서?

어째서 내 생은 단 한번뿐인 걸까요?

무슨 이유로 바로 여기, 지구에 착륙한 걸까요? 이 작은 혹성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나 여기에 없었던 걸까요?

모든 시간을 가로질러 왜 하필 지금일까요?

모든 수평선을 뛰어넘어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무엇 때문에 천인(天人)도 아니고, 강장 동물도 아니고, 해조류도 아닌 걸까요?

무슨 사연으로 단단한 뼈와 뜨거운 피를 가졌을까요?

나 자신을 나로 채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왜 하필 어제도 아니고, 백 년 전도 아닌 바로 지금

왜 하필 옆 자리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도 아닌 바로 이곳에 앉아서

어두운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걸까요?

마치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으르렁대는 성난 강아지처럼.

-시집 『끝과 시작』(문학과지성사, 2007, 최성은 옮김)

그녀는 평소 '나는 모른다'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고 노벨문학상(1996) 수상 소감에서 밝힌 바 있다. 이 시는 순전히 자신에게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질문들을 천연덕스럽게 던지고 있다. 왜일까? 그것은 제목이 말해 주고 있다. 어떻게? 그것은 마지막 행이 답이다.

폴란드 역사는 질식사다. 전쟁과 아우슈비츠로 봉인된 가슴, 얼어붙은 입을 겨우 풀어놓기까지의 과정이 폴란드 문학사의 지근거리 모습이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거친 각고의 결실이다. 그녀는 이런 역사에서 '도대체 왜?'라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았다. 폴란드와 우리의 역사는 닮았지만 결정적 차이는 분단에 있다. 해방 이후 온전히 우리 몸과 마음으로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겪었더라면 우리 문학은 훨씬 풍성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직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끝나지 않았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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