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지 기행 아시아를 가다] 고산족 순례-(1) 몽족의 상례

◆이승의 그림자

나무를 ㅅ자 모양으로 만들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양철 지붕 위에 눌러놓은 움막 같은 쪽방 가게 하나, 24세의 '솜차이'와 동갑내기의 몽족 부인이 운영한다. 부인은 배가 남산만 한 게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막 들어서는 나에게 솜차이는 마을에 초상이 났다며 가보자고 한다.

89세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며칠 전 손자며느리로 보이는 아낙 둘이 달라붙어 거의 전라에 가깝게 할머니의 옷을 벗겨놓고 마당에서 몸을 씻기고 있더니. 평생 이 산속 까끌막을 바람처럼 오르내리며 자갈밭을 일구어 아이들을 먹여 살렸을 할머니. 무슨 계시에 이끌린 것처럼 우연히 이 집 앞을 지나다 그의 사진을 찍었었다. 축 늘어진 가죽부대처럼 까칠해져 버린 피부, 앙상한 몸매, 그게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70세의 아들은 여기저기 부산하게 뛰어다닌다. 상가 일을 지휘하는 사람은 쉰 살의 손자이다. 손자에게는 자식이 12명이나 된다. 딸이 여섯, 아들이 여섯이다. 큰아들은 올해 29세인데, 아직 솜털이 가시지 않은 스무 살 새색시의 등에 업힌 아기까지 있으니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전엔 고손자까지 5대가 한집에 살았던 셈이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것 같은 아이들 몇 명이 더 보이는 걸 보니 고손자들도 상당수 되는 듯하다. 이곳에서는 보기 힘든 예쁜 타일로 바닥을 깔고 천장도 예쁜 꽃무늬로 꾸민 집이다. 사내는 자그마한 체구에도 열심히 살았던 모양이다. 젊은 아낙은 스스럼없이 뽀얀 젖을 꺼내 아이에게 먹인다. 눈 옆에는 혹처럼 뭐가 나 있는데 그녀의 남편은 돈이 없어 병원에는 못 간다고 손사래를 치는데 눈에 잠시 슬픔이 어린다.

머리에 하얀 수건을 질끈 묶은 자손들은 집 안 귀퉁이 땅 위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데 족히 20, 30명은 되어 보인다. 아직 오지 않은 가족까지 있다니 그 수가 엄청날 듯하다.

◆집 안 풍경

마당 한쪽 귀퉁이에는 몸을 씻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 있다. 우리 고향 마을 마당에 있는 측간처럼 생겼다. 남편이 샤워를 하는 동안 부인은 까슬까슬하게 세탁한 옷을 들고 기다린다. 수많은 날 저곳에서 온 가족이 땀에 전 몸을 씻었으리라. 그리고 밤이면 어둑한 실내에 모여 웃음꽃을 피우며 허기를 달랬으리라.

이 마을에선 보통 큰 수건 한 장만 두르고 마당과 집 안팎을 돌아다니는 게 예사인데 아낙들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슴을 다 드러낸 여성들이 다녔다는데 그런 사진을 도시의 가게에서 가끔 볼 수도 있다.

'중국계'라 그런지 따뜻한 남차(녹차)를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 안에 넉넉하게 우려내 놓고 즐겨 마신다. 놀랍게도 '차'라는 발음이 우리와 똑같다. 이외에도 비슷한 발음들이 상당수 많은데, 중국어처럼 악센트가 강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오지 산속에 수많은 고산족들이 사는데 모두가 저마다의 고유어가 있다.

◆오지 산속, 상갓집의 밤 풍경

'깔리양족' 상가에 가면 조의금을 내는 곳이 따로 없다. 장작불 위에 고깃국을 약간 올려놓았는데 배고픈 사람만 가서 따로 먹는다. 그 외 커피 몇 잔이 있을 뿐 특별한 음식은 없다. 어느 집에서는 마른 콩을 내놓기도 한다. 3일장을 하면 관 주위에 엄청난 개수의 촛불을 밤새 켜 둔다. 누군가는 뽑기판을 가져오고 몇 군데 포커판도 같이 벌어져 밤새 도박을 한다. 이삼일 뒤에는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해 식사를 하는데 술도 사 가지고 간다.

몽족의 경우는 다르다. 정식으로 조의금을 받는 곳도 있고 밥과 고깃국, 커피, 남차도 풍족하다. 밤이 되면 두세 군데 포커판이 벌어지고 한쪽에서는 TV를 본다. 밤 10시가 넘어가면 새참이 나오고 다시 밥들을 먹는데, 그들의 핏줄 속에 중국의 전통이 흐르는 듯도 하다.

6시가 넘어가자 제례가 시작된다. 하얀 수건을 쓴 자손들은 손님이 오면 땅바닥에 엎드려 서로 큰절을 한다. 자손들이 영정을 갖다놓고 그 앞에 꽃을 놓으며 향도 듬뿍 피운다. 북과 함께 세 개의 관이 있는 악기를 불어 식을 진행한다. 땅바닥에 앉은 자손들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없이 상념에 젖는다. 부는 악기가 의식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듯 마을에서 연주를 잘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오랜 시간 연주를 한다. 음악에 따라 가볍게 돌아가는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느릿한 곡조 속에 소수민족으로 쫓기며 살아온 그들의 한과 고적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몽족 전통옷을 입은 가족과 마을 아낙들은 24시간 망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먼지떨이 같은 걸로 계속 털어낸다. 뒤에는 금종이로 만든 배 모양을 잔뜩 붙여놓고 그 사이에 오색등을 몇 개 걸어 두었다. 망자의 배 위에 촛불을 켜둔 그릇이 있고 머리 쪽에도 오색등을 걸어두었다. 북 아래에는 막 잡은 듯한 돼지고기가 걸려 있다.

따로 마련된 조의금 석에는 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방인도 20바트(약 800원)를 내고 막 돌아서는데 동네가 쩌렁쩌렁하도록 7, 8발 폭죽을 터뜨린다. 타이에서 유명한 홍통과 이름이 닮은 위스키 융통을 자손들이 소다에 타 연신 내오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따뜻한 남차를 마신다.

윤재훈(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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