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

젊은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이 위암에 걸렸다. 의사가 암이라고 했을 때 그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나이 지긋한 김 목사님이 전립선암으로 호스피스에 입원했을 때에도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잠시 들렀소"라고 편하게 말했다.

농부였던 오갑 할아버지가 말기 위암에 걸렸다. "이제 살 만큼 살았어. 마지막으로 우리 며느리 소원 하나 들어주고 가려 하오"라며 호스피스병동에서 기독교인이 됐다. 예절 바르던 며느리가 예전부터 오갑 할아버지에게 예수 믿으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요추로 전이된 암 때문에 하반신 마비가 왔지만 그리 슬퍼하지는 않았다. 멀리 있는 아들과 매일 영상통화를 했고, 여섯 살 먹은 손자가 침상 옆에서 장난감 레고를 맞추면 따뜻한 눈길로 바라봤다.

나는 죽음의 민얼굴이 이런 줄로만 알았다. 비록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오갑 할아버지처럼 마지막에 와서는 다 내려놓고 삶의 갈등에서 헤어나는 편안함을 기대했다.

그러나 마지막이라고 해서 버리는 것이 다 녹록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대식 씨 어머니는 말기 폐암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난 절대로 죽으면 안 돼"라고 했다. 그래서 호스피스로 오지 않고 내과로 입원했다. 그러나 대식 씨 이모는 이왕 안 될 것 같으면 시설도 좋고 통증치료도 잘 되는 호스피스로 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환자가 그렇게 싫어하는데 굳이 호스피스로 오실 이유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선생님, 반대만 하지 말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언니한테는 눈먼 아들이 있어요. 그 아이 때문에 언니가 한(恨)이 맺혀서 그래요. 아직 장가를 못 보냈거든요."

하나뿐인 아들 대식 씨가 사고로 세 살 때 눈이 멀었다. 나는 최종적으로 세상에 홀로 남겨질 대식 씨의 의견을 듣고 입원을 결정해야 했다. 대식 씨는 건장한 청년이었다. D대학 점자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어머니가 더 못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서 정말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어떡하면 우리 어머니가 편해지실까요?" 그는 허공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진료실 탁자 위에 있던 티슈를 한 움큼 뽑아 그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가기 전에 다 버리고 가야 한다는 것은 환상일 수 있어요. 정신없이 살다 보면 안고 가는 사람도 있고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어머님께서도 응어리진 마음이 있다기보다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을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대식 씨는 어머니의 죽음을 부정하는 반응이 정상이라는 말에 안도를 했다.

버리는 것보다 때로는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므로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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