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청렴 대한민국'을 기다리며

2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새 학년을 맡고 학급회장 선거가 있던 날, 전날 알림장에 '학급선거-우리 반 대표를 할 만한 친구 생각해오기'라고 적어줬다. 1학년 때는 회장, 부회장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잔뜩 기대를 한 모양이다. 출근을 해보니, 예쁘고 멋지게 차려입고 정견발표를 연습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귀여웠다.

흐뭇한 모습으로 아이들과 함께 아침독서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 입안이 수상했다. 몇몇이 오물오물 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책상마다 똑같은 모양의 사탕도 하나씩 놓여 있었다. '아뿔싸! 선거 후에 알았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읽던 책을 덮었다.

'청렴'을 이야기할 좋은 기회가 이렇게 찾아왔다. 아이들과 함께 좋은 반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선거법을 알아보며, 왜 그런 선거법이 생겨났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탕은 다시 주인에게 대부분 돌아갔으며, 사탕 없이도 그 아이는 부반장에 당선됐다.

아이들을 하교시킨 후 학급일지를 정리하며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전교 임원선거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전교 임원 후보 중 공약으로 '반마다 축구공을 사주겠다'는 아이가 있었다. 남학생들은 환호했고, 남학생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당시였기에 결국 그 친구가 전교 회장에 당선됐다. 아직까지 그 기억이 선명한 것을 보면, 당시에도 어렸지만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땐 '청렴'이라는 말조차 생소했고, 학교에서 역시 큰 문제의식을 느끼진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청렴한 대한민국'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겪어온 이런 문화와 함께 청렴교육의 부재(不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다. 시골에 있다가 도시로 전학을 온 나의 고종사촌 동생은 고모가 학부모 총회 때 담임선생님에게 스타킹을 선물했다가 1년 내내 힘든 학교생활을 보냈다고 했다. 우리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1학기 때는 소풍이며 운동회며 선생님 도시락 싸야 할 일이 많으니, 2학기 때만 반장을 하도록 했다고 하신다. 내가 겪고 들은 일들이 이 정도인데 과거 우리나라 청렴의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우리 학교 학부모 상담주간 안내 통신문에는 '어떤 것도 가져오지 말라'는 문구가 들어갔고, 현장 체험학습 안내문에는 '교사와 운전기사의 중식을 일절 제공받지 않는다'는 안내가 함께 되어 있다. 청렴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교마다 다양한 자정작용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교육현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직도 스승의 날에 의구심을 가지고, '정말 아무것도 안 받았냐'고 물어올 때가 많다. 그런 시선들이 따갑게 느껴지고 서글퍼질 때가 있지만, 떳떳하게 아이들의 손편지를 받아서 기쁘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려 한다. 지금 우리가 교육현장에서 청렴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분명히 10년쯤 후에는 청렴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이제는 무엇보다 '청렴'이 공직사회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고, 누구나 청렴한 대한민국을 꿈꾸고 청렴하지 못한 정치인들은 국민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는 세상이 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라나고 교육받은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대한민국은 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재산이나 학벌보다 능력을 인정받고 꿈을 키워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났으면 좋겠다. 우리 어른들이 먼저 '청렴'을 실천하고, '청렴'한 사람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청렴'을 꾸준하게 가르친다면 '청렴 대한민국'은 반드시 올 것이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깨끗한 교육풍토는 먼 훗날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청렴 대한민국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선영/대구장성초교 교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