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음반 읽어주는 남자] 김현식-3집 비처럼 음악처럼

고(故) 김현식의 3집(1986)은 30만 장이 팔려나가며 대중들에게 그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사실 김현식의 1집(1980)은 '떠나가 버렸네'(3집에 다시 수록)와 같은 발라드,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은 훵크(연주는 훵크 밴드 '사랑과 평화'가 했다), 베토벤의 '운명' 경음악 연주곡과 같은 실험적 음악이 뒤섞여 있어 콘셉트가 불분명했고, 당연하게도 흥행에 실패했다. 2집(1984)은 발표 1년 뒤에야 타이틀곡 '사랑했어요'를 히트시키지만, 김현식의 실력에 걸맞은 폭발력은 내지 못했다.

3집의 성공 요인은 김현식이 결성한 백밴드 '봄여름가을겨울'에 있다. 1, 2집 때와 달리 김현식은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적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세션진을 구성해 3집 작업에서 지휘했다. 백밴드 멤버들의 역량도 대단했다. 단지 연주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곡을 써서 김현식에게 주기도 했다. 당시 밴드 멤버는 현재의 '봄여름가을겨울'로 활동하고 있는 김종진(기타)과 전태관(드럼), '빛과 소금'의 박성식(피아노)과 장기호(베이스), 그리고 고 유재하였다. 유재하는 김현식의 3집 앨범에 '가리워진 길'을 만들어 주고는 앨범 녹음 직전 밴드에서 탈퇴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명확해진 콘셉트도 김현식 3집의 성과다. 이 앨범 이후 김현식은 발라드의 세련미 및 블루스의 감수성을 자기 음악에 계속 녹여낸다.

이 앨범은 '비'라는 단어가 들어간 곡이 3곡이나 된다. 앨범 총수록곡 10곡 중 3곡이다. 1번 트랙 '빗속의 연가', 4번 트랙 '비오는 어느 저녁', 그리고 타이틀곡이자 이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곡인 7번 트랙 '비처럼 음악처럼'이다. 한 곡 더 추가하자면 9번 트랙이며 비의 겨울 버전인 '눈'을 주제로 한 '눈 내리던 겨울밤'도 있다.

'빗속의 연가'는 뽕끼가 살짝 가미된 발라드, '비오는 어느 저녁'은 록킹한 블루스다. 박성식이 만들어 준 '비처럼 음악처럼'은 빛과 소금 특유의 그루브한 편곡이 매력적인 록 발라드다. 이 3곡은 세차게 내리다, 천둥과 번개도 일으키다, 이내 감미롭게 땅을 적시는 비의 여러 모습을 잘 담고 있다. 사람의 감정선이 바로 비와 닮았지 않는가.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비오는 어느 저녁'을 제일 좋아한다. 이런 풍경을 상상한다. 육중한 베이스와 서슬 퍼런 신시사이저 연주로 우거진 밀림, 김현식의 저음은 밀림의 왕 사자처럼 어슬렁거리다 갑자기 먹이를 낚아채듯 포효한다. 곡 내내 덧씌워지는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마치 왕의 등극을 찬미하는 제사장 원숭이의 울부짖음 같다. 곡의 절정에서 왕은 노래한다. "내리는 비야. 그치지 말아다오. 내 마음 흠뻑 적셔다오." 그에게 비는 생명력의 원천인 셈이다.

이 앨범을 계기로 언더그라운드 가요계의 왕으로 등극하는 김현식, 불과 그가 하늘로 돌아가기 4년 전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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