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5월 22일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서 그의 유해는 초라한 수레에 실려 옮겨졌다. "가난한 사람들의 영구차에 실려 무덤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유언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장지는 영웅들이 묻힌다는 판테온이었다. 마지막 길을 보기 위해 200만 명이 몰렸다.
인생에선 불행이 오히려 행운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당초 왕당파적인 낭만주의자였던 그를 바꾼 것은 나폴레옹 3세였다.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항거하면서 망명길에 들어선 위고는 망명 기간 중에 등 숱한 명작을 남겼다. 나폴레옹 3세가 퇴위한 1870년, 19년 만에 파리로 돌아와 정치인으로서 빈민 구제, 언론자유 보장, 초등학교 의무교육 등을 위해 헌신했다. 그 당시 이미 유럽 통합과 유로화 출현을 예고했다. 작가이면서 열렬한 공화파 정치인이었고, 사형 폐지를 주장한 인도주의자이기도 한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인들에게 수사가 필요없는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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