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에서 '형제의 난(亂)'이 또 터졌다.
한국과 일본의 롯데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27, 28일 벌어진 신동주(장남)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차남)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격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신 전 부회장이 창업주이자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앞세워 신 회장을 축출하려다, 신 회장이 오히려 긴급 이사회를 열어 아버지를 대표이사 회장에서 전격 해임하면서 신 전 부회장의 '쿠데타'는 하루 만에 일단락됐다. '권력이란 아버지와 아들, 형제자매 사이에도 결코 나눠 가질 수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다.
◆되풀이되는 재벌가 '형제의 난'
형제의 난은 재벌그룹 오너 일가의 후계 경영권 분쟁 때마다 곧잘 등장해왔다. 그 원조격은 태조 이성계의 4남 이방간이 5남 이방원(태종)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이른바 왕자의 난이다. 평소 왕위에 대한 욕심이 있던 이방간이 세력이 컸던 이방원을 견제하기 위해 덤볐다가, 오히려 패해 유배를 가는 신세가 된다. 이방원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 제2대왕 정종에 의해 세자로 책봉되기에 이른다.
형제의 난 또는 왕자의 난의 예는 오늘날 재벌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대그룹에서는 2000년 공동회장직을 두고 형제의 난이 일어났다. 아버지인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차남인 정몽구 옛 현대그룹 회장과 5남인 고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공동회장이 맞붙었다. 정몽구 회장이 아버지가 와병 중인 사이 정몽헌 회장 측근 인사들을 배제하는 인사를 단행하자, 정 공동회장이 반발하며 경영권 분쟁이 격화됐다. 결국 아버지와 두 아들은 정부와 채권단의 문책 요구에 모두 임원직에서 물러났고, 현대는 현대아산을 중심으로 한 현대그룹(정몽헌 전 공동회장)과 현대자동차그룹(정몽구 회장), 현대중공업그룹(정몽준 전 의원) 등 여러 개로 쪼개졌다.
두산그룹에서도 형제간 다툼이 벌어졌다. 동생에게 밀려난 형이 반격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점이 롯데가(家) 형제의 난과 닮았다. 두산그룹은 2005년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이 동생인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이 그룹 총수로 추대되자 이에 반발해 동생을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형제의 난을 겪었다.
금호그룹도 2009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창업주의 뜻에 따라 형제 경영을 시작했지만, 3남인 박삼구 회장과 4남인 박찬구 회장 간 골이 깊어지면서 그룹이 금호아시아나 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쪼개졌다. 두 아들 간의 갈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비교적 최근 사례는 삼성가(家)의 상속 분쟁이다.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2012년 동생인 이건희 삼성 회장을 상대로 유산 소송을 제기했다가 법정 소송에서 패한 것이다. 이병철 회장의 삼남인 이건희 회장은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주식을 물려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이 알려지지 않은 차명주식을 가져갔다며 이맹희 전 회장이 소송을 걸었다.
◆'재벌가의 민낯'…후진적 지배구조 개선해야
재벌가 형제의 난은 '돈이 피보다 진하다'는 말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재벌가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말도 돈다.
재벌가 상속 갈등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 이유로는 소수의 지주회사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순환출자식 지배구조에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롯데그룹 사태의 핵이 된 '광윤사'(光潤社)라는 회사는 일본의 비상장 포장재 기업으로, 그 운영이 베일에 싸여 있다. 능력을 우선으로 한 투명한 경영권 승계 원칙 없이 재벌가 내에서 자기들끼리 오너를 정하는 후진적 경영방식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재벌가 형제의 난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재물 앞에는 형제도 없다' '경영 능력과 경제 원리가 아닌 가족끼리 치고받는 결과로 오너가 정해지면 주주는 뭐하러 있느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대구대 서민교 교수는 "국내 40대 재벌그룹 중 경영권 분쟁을 겪는 곳이 18개나 된다는 조사가 있다"며 "재벌가의 경영권 분쟁은 반기업 정서 확산과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는 만큼, 이번 롯데가의 분쟁을 계기로 객관적이고 투명한 경영권 승계원칙의 필요성을 되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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