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인가 검인정교과서인가
국사교과서 논란 정치적 편 가르기
어떤 선택해도 부정적 결과 초래
정치적 프레임 부숴버릴 수 없나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라고 지나치게 요구한다. 이 말은 자유의 원칙이 보편화된 현대사회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판이다.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항상 선택과 마주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국인이 좋아한다는 라면을 보자. 우린 우선 라면을 집에서 끓여 먹어야 할지 아니면 라면집을 가야 할지 걱정해야 한다. 라면집을 간다고 쳐도 분식집과 일본식 라면집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결정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얼큰한 매운맛 라면을 먹어야 할지 아니면 담백한 라면을 먹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현대사회는 선택의 다양성이 바로 자유라고 선전한다. 선택의 가능성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선택을 잘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넌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현대인들은 내가 원하고 선택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성장한다. 말은 쉽다. 그런데 결정은 여전히 어렵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가능성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다른 맛의 라면을 시도하기보다는 늘 먹던 라면을 선택하는 것처럼 결국 우리는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 결정할지 모른다. 습관이 우리의 자유의지를 대신한다. 우리는 자신의 이념, 가치 또는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정해진 틀에 따라 결정한다. 다양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항상 똑같이 선택하고 결정한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수많은 선택 가능성 앞에서 항상 동일하게 결정하는 것일까?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최선의 선택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가능성들이 똑같아 보인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다. 모든 것이 똑같이 좋다는 것은 모든 것이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기준이 없는 선택의 가능성은 우리의 무관심만 키운다. 진한 맛, 매운맛, 담백한 맛처럼 '개인의 취향'과 관계된 라면이 선택의 대상이라면 문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사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선택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금 우리는 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과 관련하여 또 한 번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국정교과서인가 아니면 검인정교과서인가?" 이 논란이 이미 정치적 이념의 선택 문제로 번졌다는 점에서 어느 편을 선택하든 그 영향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 결과는 부정적일 수 있다. 국정화를 선택하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소위 말하는 '올바른 역사'의 방향이 바뀌는 부정적 결과가 따를 것이다. 검인정교과서를 선택하면, 역사교육은 끊임없는 이념편향 논란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선택 자체를 거부한다고 해도 정치적 무관심이 가져올 부정적 결과는 명백하다. 이처럼 두 가지 대안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여도 부정적 제재를 받는 상황을 '이중구속'(double bind)이라고 부른다.
이 이중구속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일까? 어느 선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선사는 제자의 머리 위에 막대기를 올려놓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막대기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하면, 나는 이 막대기로 네 머리를 때릴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때릴 것이다. 그리고 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때릴 것이다." 제자는 어떻게 이 선택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선문답이 제시하는 대답은 간단하다. 제자는 머리 위의 막대기를 잡아채어 스승으로부터 빼앗으면 된다는 것이다.
국정화 논란의 해법도 어찌 보면 간단할 수 있다.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논란의 계기와 동기를 꿰뚫어봐야 한다. 왜 이 정부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인가? 진정한 의미에서 선택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습관처럼 반복되는 편 가르기인가? 선택을 강요하는 정치적 프레임 자체를 부숴버릴 수는 없을까.
※이진우: 1956년 경기도 화성 생.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박사. 계명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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