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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동락-캠핑] 겨울의 길목에서 인적없는 바닷가 캠핑

여름 휴가철이 지나고 그나마 있던 따뜻한 기운마저 사라지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 초 사이의 캠핑을 참으로 좋아한다. 비록 적극적인 야외활동은 조금 힘들더라도 눈여겨 보아두었던 각지의 웬만한 캠핑 장소들이 온전하게 비워지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굳이 애써서 첩첩산중의 오지를 고생하며 찾지 않더라도 철 지난 해변이나 산자락, 근린공원 모두 인적이 끊어지고 알음알음 지인들과 함께 혹은 혼자서 오붓하게 캠핑을 즐기기에 그만한 때는 없다. 이때라면 어디를 가도 여유롭고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손에 꼽는 것은 한적한 바닷가의 캠핑이다.

겨울 길목에 즐기는 바닷가 캠핑은 따뜻한 봄날에 즐기는 것과는 임하는 자세나 환경이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차가운 기운만 사라져도 좋은 풍광의 해변은 붐빌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서로 신경쓰일 정도로 캠퍼들이 들어차고, 약간의 더위에도 바닷가의 짠바람과 습하고 비린 바다의 내음은 자칫 상당한 고역이기 일쑤다. 그런 면에서 요즘 같은 비수기의 해변은 바닷가 자체의 기운을 느끼기에 참으로 적당한 때라 아니할 수 없다.

해안도로를 따라 군데군데 위치한 차량이 접근할 수 있는 간이 해수욕장의 한 자락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바닷가의 언덕, 공원 등에 적당한 채비를 풀어 사이트를 꾸리면, 낮에 잠시 쉬어가는 몇몇 사람들 외에는 온전하게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 법적으로 불허하는 곳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다소의 불편을 감수하고 준비와 뒷정리만 철저히 한다면 의외로 많은 곳들이 경이로운 시간을 보낼 장소가 될 수 있다.

먹거리나 필수품들은 필요량보다 넉넉히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상점이 주변에 흔치 않기도 하고 도심보다 폐점시간이 빠른 탓에 야간에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노지 캠핑에 해당하는 이야기이지만 현지 주민이나 관리자를 만난다면 인사와 함께 형식적이라도 허락과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다. 간이 화장실 등 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더라도 간단한 세면 외에 설거지 등의 행위는 하지 않아야 한다. 소나무 숲과 같은 화재 위험이 있는 장소라면 바람이 강하고 건조한 계절이므로 화롯대의 장작불 사용은 삼가 해야 한다. 저녁때 바다를 바라보며 술 한잔 기울이는 것 이외엔 거의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온전한 멍 때리기와 휴식을 지루해한다면 낮에 읽을만한 것들과 간단히 손을 놀릴 것들을 준비해간다면 좋을 것이다. 주변의 어시장이나 항구, 갯바위, 방파제 낚시 같은 연계 활동도 준비한다면 낮의 무료함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모래사장에서의 간절기 캠핑은 그라운드 시트가 없는 쉘터에 야전 침대와 침낭 조합이 간편하고 깔끔하여 편리하다. 바람과 한기가 덜한 낮엔 사람들의 왕래도 거의 없기에 테이블을 밖으로 꺼내 타프 없이 햇살 아래서 식사를 즐기기에도 적당하다. 간절기부터는 실내에 난로를 이용한 난방이 필수적이라 상시 가동하는 난로를 보조 조리 기구로 이용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은근한 화력으로 끓이거나 삶는 등의 메뉴를 구성한다면 버너 없이도 훌륭한 조리가 가능하다. 껍질째 올려 구워먹는 고구마나 중탕으로 데운 따뜻한 청주도 겨울에 난로를 이용해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별미이다. 따끈히 데운 청주에다 살짝 그슬린 말린 복어 지느러미를 넣어 향을 우린다면 일식 주점의 풍미에 필적하는 히레사케가 된다.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겨울이나 여름이나 언제든지, 바다이건 교외 공원이건 어디서든지 즐겁게 캠핑을 꾸리고 즐길 수 있다. 다만 겨울의 길목에 들어서면 조용하고 목가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소의 선택권이 훨씬 늘어난다고나 할까. 그중에서도 겨울의 한적한 바닷가는 평소 마주했던 피서철 해수욕장의 인산인해, 어시장의 활기와 분주함과는 다른 바다의 민낯을 마주하고 끊기지 않는 파도 소리와 온전히 교감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 그 해변의 한 자락에 자그만 텐트 하나에 몸을 맡기고 좋은 친구와 조촐히 함께한다면 그만한 호사를 또 언제 어디서 누릴 수 있을까. 바람이 차가운 계절과 캠핑이 아니고서는 바다와 인간의 경계에서 온전한 여유를 가질 기회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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