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꼰대라도 진실하다면

내가 진행하는 철학 공부 모임에 대학생이 오면 최대한 말을 조심한다. 토론하는 주제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보다 참가자가 잘못된 발언을 해도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비록 그 견해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우리 토론 전체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말과 함께 말할 때 평소 습관인 손가락질도 조심하고, 목소리 톤도 부드럽게 만든다. 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혹시 상대가 자신이 잘못된 발언을 해서 공격받았다고 느끼면 어김없이 나는 '꼰대질'을 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시니어가 주니어로부터 '꼰대'로 불리게 될지 '멘토'로 불리게 될지는 '말하는 시니어'가 주니어의 기준에서 '성공한 사람'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을 읽었던 적이 있다. 이 분석대로라면 사회적 성공을 거둔 선배의 조언은 '멘토의 조언'이 되지만, 교수가 아닌 일개 프리랜서 작가인 나 같은 사람의 조언은 내가 아무리 말조심해도 꼰대질이 되기 십상이다. 성공하지 못했다면 성공을 위한 조언을 할 자격도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입바른 소리라는 건 그것이 옳으면 옳을수록 그 말대로 행하기란 어려운 법이라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또 말의 올바름을 성공이나 인격적 측면에서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를테면 올바른 말을 하고 싶다면 말하는 사람이 그 말대로 먼저 살아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말할 자격도 없다며 '꼰대'로 규정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업적이나 인격, 태도로 말의 올바름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 자체의 올바름 외에 말 바깥의 요소를 자꾸 끌어들이게 되면 말이 엄밀한 '설득'이 아니라 그저 '선전'이나 '마타도어'의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커지게 된다.

영화 '7번 방의 선물'에서 어린 소녀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는 이용구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채택한 증인들의 증언에 대해 검사 측은 증인들이 과거에 조직폭력배이며 사기 행각을 벌인 적이 있기에 증언이 될 수 없다고 반론한다. 그러나 증언의 힘은 증인의 과거 행적이나 힘에 있지 않고, 그 증언이 얼마나 사태에 적합한지, 또 논리적인가에 달려 있다.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말하는지에 집중하다 보면 말이 지닌 진실과 무게, 힘을 가늠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용구는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말잔치 속에서 말하는 사람의 인격, 업적, 행적도 참고사항이 되어야겠지만 이런 것이 '말' 자체를 초과하면 말은 힘을 잃는다. 독일 대중들이 '말'의 진실 대신 말투, 억양, 말솜씨, 분위기에 현혹되었을 때 히틀러가 총통이 되었다. 독재자는 영웅처럼 나타났다. "영 아닌 소재는 없소. 내용만 진실된다면 간결하고 꾸밈없다면." 우디 앨런의 말이다. 꼰대면 어떤가? 말이 만약 진실하다면 이미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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