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내로남불' 청문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곱씹을수록 재미있고 재기 넘치는 말이다. '남은 안 되지만, 나는 괜찮다'는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사고나 이중 잣대를 가리킬 때 흔히 쓰인다. 요즘에는 이 말을 '내로남불'이라고 줄여 부른다.

'내로남불'을 처음 쓴 사람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다. 박 전 의장은 6공 당시 '명대변인'으로 불리며 폭탄주를 유행시키고 '정치 9단' '총체적 난국' 등의 신조어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박 전 의장이 이 말을 쓴 것은 대변인 시절이 아니라, 1996년 15대 총선 직후다. 당시 여소야대로 인해 여당(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와 관련해 야당(새정치국민회의)이 여당에 맹공을 퍼붓는 상황을 비꼬면서 한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말이 최근 들어 다시 각광을 받았다는 점이다. 박 전 의장이 2014년 골프장 캐디 성추행 사건으로 기소되자, 인터넷에는 '내로남불'을 패러디한 말이 유행했다. "내가 하면 딸 같아서 쓰다듬어 준 것이고, 남이 하면 성추행이다."

요즘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면 '내로남불'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등 야당은 "후보자의 흠결이 너무 많다"고 공격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역대 총리 후보자에 비해서는 훨씬 깨끗하다"고 옹호했다. '역대 후보자'와 굳이 비교하자면 옳은 주장일지 모르지만,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을 돌아보면 낯 간지러운 소리다. 청문회 때 날을 시퍼렇게 세우던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나니 순한 양처럼 후보자를 비호하고 편을 드니 왠지 우습게 보인다.

민주당은 박근혜 정권 4년여 동안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 등 총리 후보자 3명을 낙마시킨 전례가 있다. 이런 분들을 총리로 내세운 박 정권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민주당의 비타협적 공세가 낙마를 부추긴 측면도 있다. 민주당은 박 정권을 두드리는 것에 집중했을 뿐, 타협이나 합의와는 거리가 먼 태도를 고수했다. '박 정권의 총리 후보는 민주당의 밥이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제 공수가 바뀌고 나니, 입장이 역전됐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야당이 비타협적 태도로 일관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낙연 후보자는 인준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 정치 환경에서 장기간의 협치나 타협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치판만큼 '뿌린 대로 거둔다' '주는 만큼 되돌아온다'는 법칙이 잘 먹혀드는 곳은 없다. 민주당이 '베푼 만큼 받을지' '내로남불'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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