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째 매달 칼럼을 기고하다 보니 이것도 업(業)이 됐다고 '직업병'을 하나 얻은 것 같다. 음악을 들을 때 단순히 멜로디를 즐기지 못하고 가사를 찾고 내용을 분석하게 된다. 로맨스가 바탕인 영화를 봐도 러브라인에는 깊이 빠져들지 못하고 시대적 배경을 조사하고 현실을 투영해 해석해 보기를 시도한다. 새로 생긴 '직업병'의 단점이라면 감성이 이성보다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들었다는 것, 장점이라면 음악과 영화에서 보여지는 순간의 장면에서도 다양한 생각을 끌어낼 수 있는 훈련이 됐다는 것.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연상한다는 것은 가끔 피곤한 작업이기도 하지만 몸에 배어 습관이 된 지금은 귀하게 습득한 선물 같은 '병'이기도 하다.
지난 6월 25일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난 지 8주기가 되던 날이었다. 라디오에서는 하루 종일 그를 추모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역사적인 음반으로 기록된 'Thriller'부터 전 세계에 '문워크' 댄스를 전파시켰던 'Billie Jean', 세계 평화와 인류를 치유하기 위해 노래했던 'We are the World'에 이어 'Heal the World'까지…. 연이어 나오는 그의 수많은 히트곡을 듣고 있자니 또다시 '직업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서 내 잡념은 노래의 내용과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그를 추억하기 위한 첫 곡으로 'Thriller'가 나오자 연상 작용은 지난해 발생한 '국정 농단' 사건을 떠올렸다. 영화나 출판에서 '스릴러물'이라 하면 긴장감이 넘치고 흥미진진한 범죄 소설이나 각본을 말한다. 2016년 10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믿기지 않는 사건이 터졌고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혔다. 온 국민은 매일 저녁 TV 앞에 모여 쏟아지는 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건의 진실이 하나둘씩 드러나자 국가는 위기를 넘어 현 상황 그대로는 존치가 힘든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침 라디오에서 'Dangerous'가 나왔다. 마이클 잭슨은 노래에서 "그녀는 너무 위험해"라고 반복적으로 얘기한다. 타이밍이 절묘해 가사가 귀에 꽂힌다.
이후 대한민국은 둘로 쪼개져 양극단으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그의 'Black or White'라는 곡의 제목처럼 우리 국민은 '흙이냐 백이냐' '진보냐 보수냐'로 나뉘어 치열한 진영 싸움을 이어갔다. '세상을 바꾸려거든 거울 속 당신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마이클 잭슨의 'Man in the Mirror'가 들려오자 세상을 바꾸기 위해 광장으로 나온 수천만 촛불의 모습이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내 손으로 뽑았던 지도자를 다시 내 손으로 바꾸기 위해 나왔다고 외치는 중년 여성, 정치에 무관심했지만 나라를 바꾸기 위해 나부터 바뀌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청년들의 자기 고백이 계속됐다. 믿었던 지도자에 실망하고 무능하고 비겁했던 정치권에 절망한 국민은 한데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으며 마음의 치유를 얻는 듯했다.
개인적으로 마이클 잭슨의 최고의 명곡으로 꼽는 'Heal the World'에는 '세상을 치유해요,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봐요'라는 가사가 있다. 당시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뭉친 국민은 모두 가슴에 이 구절을 품고 있지 않았을까. 'You are not alone'이라는 노래와 같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지루하고 힘든 전쟁 같은 날들을 기어이 견뎌내지 않았을까.
라디오에서 그의 마지막 곡으로 팝스타 45명이 함께 부른 'We are the World'를 선곡했다. 아름다운 하모니에 감동적인 선율이 울려 퍼진다. "세계가 하나로 뭉쳐야 할 때다. 우리는 모두 신의 큰 가족의 일부다"라는 노랫말을 이제 우리도 한목소리로 불러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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