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럽 혁명의 주역은 '보통 사람들'…『유럽민중사』

유럽민중사/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펴냄

이 책의 부제가 길다.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 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대략 저자가 말하려는 주요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A. 펠츠는 엘긴 커뮤니티 칼리지의 역사학 교수이자 시카고 노동계급연구소 이사다. 주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관한 저서들을 많이 썼다. 이 책을 옮긴 장석준(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유럽의 민중투쟁사를 살펴보면서, 우리나라의 1987년 6월 항쟁과 2017 촛불혁명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자 했다.

유럽은 종교개혁 급진파, 18세기 정치혁명, 노동계급의 발흥 등 아래로부터의 반란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데 더없이 좋은 토양을 갖고 있다. 20세기에는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의 등장이 있었고, 냉전 시기의 민중 저항, 1968년의 학생'노동자 저항이 있었다. 저자는 역사라는 무대를 활보하는 위인의 행적을 구경꾼처럼 쫓아가지 않고, 오히려 민중이 사회 변화의 주역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중세 이후 유럽 민중사의 입문서다. 민중투쟁사와 민중생활사를 소수 지배 엘리트의 시각에서 탈피해, 보통 사람들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재서술하고 있다. 민중사란 이런 지배적 역사 서술을 비판하고 전복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즉, 이제껏 발언권도 제대로 없었던 집단(민중)을 끊임없이 새로 무대에 올려 역사 전반을 재구성하는 일로 보면 된다.

유럽 여러 나라들은 평탄한 진보의 길을 밟으며 복지국가라는 정점에 도달했다기보다 끊임없는 민중투쟁의 전진과 후퇴 속에 그나마 좀 더 나은 사회로 변해왔다. 지금도 그 과정은 진행 중이다. '유러피언 드림'이라는 이름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던 유럽이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에는 가장 반동적인 신자유주의 지배층과 민중의 대립, 극우 인종주의 대안의 득세 등으로 시끄럽다. 이 책을 보면, 지금의 투쟁하는 유럽이 실은 기나긴 역사에서 오히려 더 익숙한 광경임을 깨닫게 된다. 유럽 중심주의의 신화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유럽 민중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유럽 민중의 투쟁과 역사를 집대성한 이 책의 밑바탕에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깔고 있다. 새로운 역사기술의 모범을 보인 20세기 중반 영어권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에릭 홉스봄, 에드워드 파머 톰슨 등)이 있고, 20세기 말의 풍요로운 미시역사 연구들이 있다. 이에 더해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 여성사 연구다. 이 방면의 역사학자들은 이제껏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관련 주제들에 천착할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시각에서 기존 역사상을 철처히 비판하고 재구성한다. 미국, 러시아 양측의 기밀문서 해제 덕분에 1차 사료의 양과 질 자체가 달라지면서 새로운 지평을 맞이한 냉전사의 연구 성과도 생생히 소개한다.

저자 펠츠는 종교개혁 급진파의 숨은 역사에도 민중의 함성이 메아리치고 있었고, 러시아 혁명의 주인공도 몇몇 혁명가가 아니라 당대의 보통 사람들이었음을 적시하고 있다. 대다수의 유럽사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계몽주의 이후 유럽 문명이 이룬 승리가 찬가로 끝맺는 반면 펠츠는 철저히 민중사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보리스 카갈리츠키(지구화 연구 및 사회운동 연구사 이사)는 이 책에 대해 "더 나은 삶을 위해 그리고 사회정치적 권리를 위해 여러 세대에 걸쳐 전개된 민중투쟁의 흥미로운 이야기"라며 "계몽, 진보, 사회 변화라는 관념들이 의문시되는 지금이야말로 이 이야기들을 다시 살펴봐야 할 때"라고 추천했다.

이 책의 목차는 중세의 붕괴부터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17세기 영국혁명, 19세기 파리 코뮌, 20세기 러시아 혁명, 냉전 중의 유럽인들, 유럽 21세기에 던져지다의 순으로 기술하고 있다. 488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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