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될 턱이 있나!"
1980년대 후반, 시사 코미디의 원조인 고 김형곤(1957~2006)은 매주 TV에서 이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턱을 무지막지하게 쳐댔다. 금기와 다름없는 영부인 이순자 여사의 턱을 과감하게 비꼬았으니 대단한 용기와 담력이 아닐 수 없다.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시퍼런 시기에 풍자 코미디 '회장님 우리 회장님'을 방송했다는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비룡그룹 회장인 김형곤이 중역회의에서 날린 유행어 "잘돼야 될 텐데"는 재벌 그룹과 당시 정치'사회의 부조리를 상징한다. 김학래와 엄용수는 손바닥을 비비며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딸랑~"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에밀레(종)입니다. 뎅~" 하며 충성 경쟁을 벌인다. 이때 양종철이 "밥 먹고 합시다"라는 뜬금없는 소리를 늘어놓으면 김형곤은 "으이그, 저게 처남만 아니었어도 짤라버리는 건데"라는 멘트를 날리는 식이다.
김형곤은 전두환 정권 때는 그럭저럭 넘어갔지만, 결국 노태우 정권 때 전'현직 대통령들의 방귀 뀌는 스타일을 풍자했다가 안기부에 끌려갔다. 안기부 직원이 그에게 "네가 각하 방귀 뀌는 걸 봤느냐?"며 혼쭐을 냈다. 김형곤은 뒷날 "내가 대통령 방귀 뀌는 걸 꼭 봐야 개그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회고했다.
참여정부 시절엔 노무현 대통령의 쌍꺼풀 수술을 두고 이렇게 웃겼다. "노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머, 대통령 눈이 참 커졌네' 하고,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은 '눈 까고 앉았네'라고 한다."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던 '공포의 삼겹살'은 국회의원 도전에 실패한 뒤 "개그 잘 배워 갑니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세상을 훌쩍 떠났다.
그가 없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정치 풍자 코미디는 지지부진했다. 대통령이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자 방송국에서 몸을 사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KBS2 TV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 코너에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연상시키는 '문교장' 부부가 등장하면서 정치 코미디 시대가 다시 열리는가 싶었다.
'19대 교장, 문교장'인 송준근이 어설픈 경상도 사투리로 이런저런 말을 하면 부인 역할의 이수지는 서울말로 해석한 뒤 문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인 '사람이 먼저다'로 결론을 맺는다. 재미는 좀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 코미디로는 완전 실격이다. 문 대통령을 홍보하는 정도가 아니라 찬양에 가깝다.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이 없으면 정치 코미디가 아니다." 김형곤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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