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시발은 1969년 '망막의 초점'이란 뜻의 '포커스 레티나'(Focus Retina)다. 북한이 남침하면 미군 증원 전력을 최단시간 내에 한반도에 집중 전개한다는 개념이다. 1968년 1'21 청와대 습격 사건과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자 박정희 정부가 미국 닉슨 행정부에 대한(對韓) 방위공약의 강력한 실천을 요구해 성사됐다.
이 훈련은 이후 1971년 '프리덤 볼트'(Freedom Bolt)로, 1976년에는 '팀 스피리트'(Team Spirit)로 명칭이 바뀌었다.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합의(1994년)로 팀 스피리트가 중단된 이후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전시증원연습'(RSOI)이 그 자리를 대체했고, 이는 상륙작전을 포함한 대규모 야외 기동훈련으로 2002년부터 실시돼 온 '독수리연습'과 2007년에 통합돼 지금의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Key Resolve-Foal Eagle)에 이르고 있다.
이들 훈련은 대북 전쟁 억지력에서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대규모 정예 병력과 미군 항공모함과 전략 폭격기, 미사일 등 첨단 전략자산의 투입은 북한에 엄청난 공포감을 심어줬다. 이런 가시적 효과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북한의 전반적 국력의 소모라는 비가시적 효과다. 팀 스피리트 훈련은 이를 잘 보여줬다.
6자 회담 차석대표였던 이용준 전 이탈리아 대사에 따르면 팀 스피리트 훈련이 진행되는 한 달여 동안 북한은 대응 훈련을 실시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렵게 비축한 유류와 군수물자를 소모해야 했고, 주민들은 모든 생산 활동을 중지해야 했으며, 당과 정부 간부를 포함한 전 주민이 방공호에서 추운 겨울을 나야 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김일성이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를 만난 자리에서 "팀 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면 응전 태세를 갖추느라 북한의 국가 기능은 완전히 마비 상태에 빠진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북한이 툭하면 한미 연합훈련을 빌미로 대화의 '판'을 깼던 이유다. 이런 사실은 한미 군사훈련이 대북 협상력의 우위를 뒷받침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요청으로 올해 독수리-키 리졸브 훈련을 예년보다 대폭 축소한 '로 키'(low key)로 하기로 한 것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스스로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자충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유화책은 북한에 먹히지 않았다는 것이 북핵 협상 25년 실패의 교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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