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사강의 LIKE A MOVIE] 플로리다 프로젝트

6살 꼬마들에 비친 '보랏빛 잔혹동화'

*해시태그: #디즈니월드 #아이들이 주인공 #하지만 15세 관람가

*명대사: "난 어른들이 울기 직전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아"

*줄거리: 플로리다 디즈니월드 근처의 모텔 '매직 캐슬'에서 철부지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꼬마 숙녀 무니(부르클린 프린스)의 시선을 통해 삶의 고달픔과 모녀의 가족애를 이야기하는 드라마.

바비(윌렘 대포)는 모텔의 시설을 관리하고 정비하는 매니저지만 불황의 여파로 매직 캐슬 모텔이 극빈층의 레지던스로 변하자, 일종의 '생활주임' 격이 되어 투숙객들을 보살핀다.

동화스러운 색감의 포스터에 매료되어, 영화의 내용 또한 그러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관객들이라면 다소 당황했을 터다. 상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은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이 모텔을 전전하는 홈리스의 이야기란 걸 알게 된다. 삶은 고달프고 인물들은 녹록지 않은 현실에 헐떡인다. 하지만 그 모든 삶의 고통을 녹일 만한 인간애로 따뜻한 감동을 받을 것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제목은 1965년 '디즈니월드'를 건설하기 위해 플로리다주 지역의 부동산을 매입하는 계획에 붙은 가칭이었는데, 영화의 맥락 역시 이와 상통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디즈니월드 맞은편 세상에 있는 모텔이다. 그 모텔의 이름은 매직 캐슬. 매직 캐슬은 보라색으로 곱게 칠해져 플로리다의 햇빛 찬란한 하늘을 배경으로 지상 낙원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불안 가득한 공간이다.

매직 캐슬에 사는 아이들이 처한 현실은 팍팍하기 짝이 없다. 목돈을 벌지 못해 주 단위로 방세를 내며 살아가는 가정의 자녀들 대부분은 불안정한 경제 상황과 제대로 된 보호 없이 지내게 된다. 주인공 무니의 엄마 헬리의 경우, 헐벗은 옷차림에 온몸은 문신으로 도배되어 있다. 헬리는 딸이 누워 있는 침대에서 담배도 피우고 마리화나도 피운다. 그런가 하면 도매가로 향수를 사와서 인근 호텔에 되팔아 일주일치 방세를 겨우겨우 마련한다. 미혼모인 헬리는 딸 무니를 돌보며 동시에 정규직을 이행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헬리는 모텔 매니저와 티격태격하기 일쑤다. 우리나라 엄마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기함할 노릇일 테다. 헬리는 분명 보편적인 엄마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그 어떤 엄마 못지않다. 끼니조차 마련하기 힘들어 무니의 친구 스쿠티를 통해 와플로 대신하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니는 구김살 없이 해맑다. 무니는 지겨운 밥 대신 맛있는 와플을 먹을 수 있고, 모텔은 훌륭한 놀이터가 된다. 모텔 부근의 빈 집은 어드벤처 공간이 되고 황량한 들판과 다리 밑에서는 피크닉도 한다. 그 어떤 상황에도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은 씁쓸한 현실에 미소를 준다. 아이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무니와 그의 친구들은 무지개 너머 황금이 있다고 믿으며 끈끈한 우정을 쌓는다. '함께 있을 땐 두려울 것이 없었다'라는 영화의 카피처럼 친구와 함께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가장 큰 행복일 테다.

프롤레타리아인 무니를 압박하는 부르주아 계급 혹은 악역으로 보이는 모텔 매니저 바비도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쪽은 아니다. 아니 바비는 매직 캐슬 모텔을 지키는 마법사일지도 모른다. 그는 얼떨결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었다. 불황의 여파로 모텔이 극빈층의 레지던스로 변하자 바비는 그곳을 보호한다. 그는 모텔의 운영과 관리는 기본이고, 어른들이 일당을 버는 동안 남겨진 아이들이 위험에 처하지는 않나 살피고 어른들의 분쟁까지 해결해 모두의 안녕을 도모하는 매직 캐슬의 마법사다. 덕분에 무니와 헬리도 잘 지내고 있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위대한 마법은 무니를 비롯한 아이들이 부린다. 아이들은 디즈니월드 맞은편 황량하게 자리한 외로운 모텔의 분위기를 단숨에 생동감 넘치게 만들어준다. 아이들의 존재로 인해 매직 캐슬은 디즈니월드보다 더 동화적인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폐허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불을 내고, 모텔의 차단기를 내려 전기가 나가게 하는 등 말썽꾸러기지만 그들은 아이스크림 하나면 세상 행복해지고 연신 까르르 웃는다. 션 베이커 감독은 '우리가 수년간 머릿속에 그려왔던 무니가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며 부르클린 프린스의 연기력을 칭찬했다. 여섯 살임에도 불구하고 연기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찍은 게 아닐까 의심될 만큼 수준급 감정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극의 후반부에 무니가 친구에게 "너는 내 유일한 베스트 프렌드인데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라" 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관객들의 눈시울까지 적시기에 충분했다. 부르클린 프린스는 제23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역대 최연소 신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시상식에서 "후보에 오른 모든 분들이 대단하신데 제가 상을 받다니 정말 큰 영광이에요.(눈물) 시상식 끝나면 다 같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요"라며 수상 소감마저 센스 넘치게 전했다.

다시 한 번 이 영화의 아이들 대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무니와 무니의 친구는 쓰러진 나무에 앉아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이 나무를 제일 좋아하는지 알아?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니까"라고. 그리고 카메라는 멀찍이 떨어져서 커다란 나무에 걸터앉은 무니와 친구를 비춘다. 그들의 재잘거림처럼 나뭇잎들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무니는 쓰러져도 계속 자랄 것이다. 다 자라기 전에 아픔을 맛볼지도 모른다. 안젠가 어려서 채 볼 수 없었던 슬픔을 보게 될 것이고 엄마를 이해함과 동시에 아이의 세계를 잃게 될 것이다. 결국 긍정과 희망이 답이다. 션 베이커 감독이 선사한 이 선물과도 같은 결말처럼 그들의 웃음과 희망이 있기에 이 사회는 살아갈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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