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대구은행, 뼈를 깎는 혁신 왜 외면하나

박인규 행장의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파문에 이어 채용 비리 의혹까지 확산되면서 대구은행의 경영 파행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관행'이라거나 '문제될 게 없다'는 해명과 달리 당국의 조사가 진행될수록 심각한 문제점들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혜 채용 사례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고, 검찰 압수수색에 앞서 관련 자료를 조직적으로 삭제·폐기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까지 파악돼 수사 확대가 불가피해 보인다.

대구은행 채용 비리를 수사 중인 대구지검은 최근 모두 30여 건의 부정 채용 사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금감원이 수사 의뢰한 2016년 신입 사원 채용 과정뿐 아니라 2015년과 2017년에도 이와 비슷한 수법의 특혜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된 것이다. 이에 검찰은 소환 조사해온 전 인사부장과 현직 인사 실무자 외에 연루자가 더 있는지 조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압수수색 때 확보한 박인규 대구은행장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과 인사 담당자 진술 등을 토대로 고위층의 개입 여부도 조사 중이다.

대구은행의 내부 비리 양상은 당국의 조사가 더 진행되면 그 실체가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윤곽만으로도 시민의 실망감은 매우 크다. 지역을 대표하는 금융기관으로서 윤리경영을 강조해온 대구은행이 막상 들춰보니 부패의 정도가 깊고, 비리가 만연한 때문이다. 이는 경영진을 비롯한 일부 구성원의 낮은 윤리의식이 조직 내부에 독버섯이 자라게끔 잘못된 환경을 만들어온 탓이다. 또 은행 경영을 감시하는 견제 장치가 지나치게 느슨한 것도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결국 방만한 경영과 파벌 싸움, 부끄러운 수준의 도덕성 등이 지역 최고 금융기관인 대구은행에 큰 구멍을 내고 만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얼마만큼 빨리 또 정확하게 수습하느냐에 대구은행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당장 대구참여연대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23일 DGB금융지주 주총에서 박 행장과 임원진의 일괄 책임론을 강조하며 퇴진을 촉구했다. 온갖 비리로 지역 은행의 역할과 책임을 저버렸다는 이유에서다.

만약 대구은행이 이를 거부하고 지금의 모습대로 계속 간다면 조직 전체가 만신창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빠른 시일 내 인적 쇄신과 함께 시스템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뼈를 깎는 혁신만이 대구은행이 살길인데도 주저하는 것은 불씨를 안고 마른 풀섶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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