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종일 주워도 1천원 안 돼…라면 하나도 못 사먹어요"

재활용품 수거 노인 "폐지값 1년 새 절반으로 뚝"

올 들어 폐지 가격이 반 토막 나면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노인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폐지는 하루 동안 아무리 모아도 1천원을 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한 할머니가 폐지를 줍다가 쉬고 있다.
올 들어 폐지 가격이 반 토막 나면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노인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폐지는 하루 동안 아무리 모아도 1천원을 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한 할머니가 폐지를 줍다가 쉬고 있다.

"종일 주워도 1천원을 못 벌어요. 다른 물가는 다 오르는데 폐지값만 내리네요."

24일 오전 대구 수성구 신천시장 인근. 박모(80) 할머니가 수레를 끌고 시장 주변을 돌아다니며 재활용품을 줍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박 할머니는 폐지를 보고도 무심하게 지나쳤다. 대신 편의점 쓰레기통에서 캔과 소주병을 발견하자 누가 가져갈세라 재빨리 수레에 담았다. 박 할머니는 "폐지값이 너무 떨어져 아무리 많이 주워가도 돈이 안 된다. 소주병이나 맥주병만 골라 담으면 그나마 낫다"고 푸념했다.

올 들어 폐지 가격이 반 토막 나면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노인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폐지는 하루 동안 아무리 모아도 1천원을 건지기 어렵고, 그나마 값이 나은 캔이나 술병은 모으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대구 남구 영남이공대학 인근에서 만난 김선학(80) 할머니는 "닷새 동안 폐지 35㎏을 모았지만 손에 쥔 돈은 2천100원밖에 안 된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옷이나 양은그릇까지 산더미처럼 갖다 주고 6천원을 받았다. 폐지는 온종일 모아도 봉지 라면 하나 못 산다"고 했다. 중구 동성로에서 만난 전용원(70) 할아버지도 "폐지값이 떨어졌지만 연락이 오면 가서 치워줘야 다른 걸 받을 수 있어서 억지로 한다. 예전엔 힘들어도 값이 괜찮았다"고 한숨지었다.

지역 재활용품 수거업체들은 지난해 1㎏당 140원 정도였던 폐지 매입가격이 올 들어 평균 70원대로 떨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한국환경공단의 재활용 가능 자원 가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기준 국내 폐신문지 가격은 140원대로 올 1월보다 3~10원가량 하락했다. 폐골판지도 전달보다 16원 내린 120원대에 그치고 있다. 이는 수거업체가 가공업체에 넘기는 가격으로, 노인들이 받는 값은 절반 수준이다.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는 "중국으로 폐지 수출길이 막혔고, 폐지를 납품받는 제지사들도 국제거래 가격이 떨어지면서 매입 단가를 낮췄다"고 밝혔다.

노인들은 값이 나은 재활용품을 모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알루미늄캔은 1㎏당 900원, 소주병과 맥주병은 1병당 각각 100원과 120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점이나 주점 등은 술병은 대부분 공급처에 반납하기 때문에 노인들에게 돌아갈 몫이 크지 않다. 편의점 직원 정수현(24) 씨는 "술병은 거의 없고, 편의점 쓰레기통에 있는 알루미늄캔은 노인들이 많이 가져가는 편"이라고 했다.

재활용품 수거업체들도 난감한 상황이다. 수거업체를 운영하는 정모(50) 씨는 "과거에는 폐지를 중국으로 수출했는데, 중국이 지난해 말부터 수입을 막아 재고가 쌓이고 있다"면서 "오랫동안 거래한 어르신들께는 1천원씩 더 얹어 드리는데 요즘은 업체도 적자가 날 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다른 수거업체를 운영하는 윤기석(56) 씨는 "재활용 자원 가격이 하락하고 있어 업계도 어렵지만 수거하는 노인들의 사정도 뻔해 안타깝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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