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정치권 개타령

몇 만 년 전 늑대가 인간의 공간으로 들어왔다. 인간의 보호를 받음으로써 늑대는 야생에서의 고달픈 먹이 활동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개가 된 늑대는 야생성을 포기하는 대신 인간에게 절대복종하는 선택적 진화를 통해 번성했다. 그 결과 현재 지구상에는 4억~10억 마리로 추산되는 개가 인간과 함께 산다.

우리나라도 애견 인구가 1천만이나 되고 2020년 반려동물 시장 규모가 6조원으로 예상될 정도로 애견 문화가 발달해 있다. 반면, 개를 두들겨 패서 잡는 야만적 식용 문화도 남아 있다. 가만히 있는 개를 발로 차 화풀이하던 우리 조상이다 보니 은연중에 개를 깔보는 성향도 있다. 특히 언어습관이 그러해서 나쁜 일이나 상황에 '개'자를 갖다 붙인다.

견공들로서는 억울할 일이다. 사실, '개'자가 들어간 말 중에 상당수는 자신들과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접두사 '개'는 '가짜' 또는 강조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 그래서 '개고생'은 '지독한 고생'을 뜻하고 '개살구'는 떫어서 못 먹는 살구의 한 품종을 일컫는다. '개새끼'는 영어 욕설 'son of bitch'와 동의어이지만, '누구 핏줄인지 알 수 없는 가짜 자식'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학설도 있다.

그런데 요즘 정치권에서 때아닌 '개' 논란이 한창이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대변인은 경찰을 개에 비유했다가 설화에 시달리고 있다. 김기현 울산시장 주변 인물을 수사하는 경찰을 성토하면서 "광견병까지 걸린 정권의 사냥개"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극언을 썼다. 당사자인 경찰은 물론이고 제삼자가 듣기에도 민망한 막말이다. 비난도 팩트에 근거해 품격있게 하면 돋보일 텐데 감정이 앞선 나머지 수위를 높이다가 역효과만 생겼다.

같은 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들개론'을 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국당에 입당한 배현진 전 MBC 아나운서 옆자리에서 스스로를 '들개 조련사'라고 칭했다. 영입 인재를 정치적으로 잘 키워 오는 6월 보궐선거 때 국회에 입성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들개가 길들여지면 '집개'가 되고 야성도 함께 사라진다. 문득 궁금해진다. 야당이 된 한국당이 아쉬운 것은 들개일까, 집개일까. 지금 한국당에 필요한 것은 당원들의 야성과 전투력일 텐데, 지도부 속내도 과연 그럴까.

어쨌거나 정치권에서 펼쳐지는 개 논란을 견공들이 혹여 알아듣는다면 떼 지어 짖어댈지도 모르겠다. "우리 좀 가만히 내버려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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