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열반절 아침

남도여행을 다녀왔다. 암자에 돌아오니 산길에 온통 진달래꽃이 가득했다. 꽃 소식은 남쪽에서 먼저 올라온다. 꽃이 없는 봄은 봄이 아니다. 꽃이 피기 때문에 봄이다.

봄이 되면 시선이 문밖으로 고정되고 방안의 사물들은 낡아 보이고 허접스럽게 느껴진다. 나그네는 머물 수 없으면 떠나라고 재촉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청정한 대나무 숲과 정겨운 토담들, 그리고 장독대의 신성함, 노란 산수유와 하얀 목련, 매화꽃, 더구나 붉은 동백꽃이 피었을 때 그 집은 가난하게 보이지 않는다. 꽃이 피고 훈김 나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고 내 집 같다.

해남에서 완도까지, 그리고 순천에서 벌교와 고흥까지 내려갔다. 바닷가 마을은 조는 듯 낮은 지붕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촌의 풍경들이 꽃 대궐을 이루며, 남도 특유의 향토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고흥안의 방조제에서 해 넘어가는 장엄한 일몰은 눈시울을 붉히게 하였다.

대서정류장에서 마중 나온 제석 스님과 조우했다. 제석 스님은 30년 넘게 고흥 봉황산에서 차밭을 일구고 도량을 가꾸며 요가와 밭농사를 짓는 농부 스님이다. 혼자 사는 수행자의 산중생활이 만만하지 않을 터지만 의연하고 건강한 생활에 머리가 숙여진다. 온돌방은 군불을 미리 지펴놓아 꽃샘추위에도 열기로 후끈거렸다.

차를 마셨다. 찻잔과 종류가 다른 차를 바꿔가며 밤늦도록 마셨다. 차를 마실 때마다 수행의 공력이 출렁거렸다.

새벽이 되었다. 창문을 열어젖히니 짙은 매화 향이 훅하고 방안 깊숙이 스며든다. 혼자 또 차를 마셨다. 차 맛이 없다. 저녁 늦게까지 차를 마셨기 때문일까? 매화 향기 때문일까? 차흥이 도망가고 차가 식어 버렸다.

멀리 바다가 아득하게 나타났다. 차에 취한 불면의 밤이 비로소 전해왔다.

"어째서 푸른 산중에 혼자 사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하지 않고 그냥 웃는다.

'마음 한가하여 도화꽃이 물에 떠서 표연히 흘러가니 여기는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유천지라네'(산중문답)

아침 공양을 마치고 또 차탁에 앉았다. 식은 차가 생각나서 무심히 찻잔을 들었다. 앗! 맛있다. 이 맛이다. 감로처럼 달달했다. 어째서 식은 차가 나를 비로소 차 맛에 이르게 하였을까?

경봉 큰스님 법문집에 '바다에 보물이 있으니 천연산 김이다. 해풍 씻겨서 자연산 김이 제일 좋다. 그러나 맛이 있으면 참 맛이 없고, 맛이 없는 가운데 참 맛이 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참 맛인가, 그냥 맛이다.'

차를 마시고 있으니 제석 스님이 맨발로 차실에 들어왔다. 차밭에 새순이 나오기 전에 덩굴과 잡목을 제거하고 서리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제석 스님! 네가 어째서 건강하고 매사에 당당한지 오늘 알았다. 그리고 시골에 살아도 스님이 부자처럼 살고 있는지"라고 칭찬하며 둘이서 크게 웃었다.

흙 묻은 작업복과 거친 손, 그은 얼굴 등은 무소유로 가는 비구가 연상된다. 무소유는 완전한 거지가 된다는 것이다. 비구는 필추에서 왔지만 큰 거지 또는 밥을 비는 사람이다.

사람에게 정신과 육신이 있지만 무소유로 가는 수행자는 거지처럼 몸에 걸친 것이 없어야 한다. 가지고 있는 것이 한 가닥이라도 있으면 비구는 아니다. 그러므로 비구의 무소유는 너무나 무서운 말이다.

고타마 싯타르타처럼 맨발이 소중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무소유에 얼마나 가까이 갔을까?

식은 차가 맛있다.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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