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사강의 LIKE A MOVIE] 당갈

판에 박힌 인도 영화? 판 뒤집은 감동 실화!

*해시태그: #세얼간이 #못지않은역대급명작 #볼리우드 #아미르칸

*명대사: "네가 진다면 수많은 인도 여자 아이들이 지는 거야"

*줄거리: 전직 레슬링 선수였던 '마하비르 싱 포갓'(아미르 칸)은 아버지의 반대로 금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레슬링을 포기한다. 아들을 통해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내리 딸만 넷이 태어나면서 좌절된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딸이 또래 남자아이들을 신나게 때리는 모습에서 잠재력을 발견하고 레슬링 특훈에 돌입한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첫째 기타(파티마 사나 셰이크)와 둘째 바비타(산야 말호트라)는 아버지의 훈련 속에 재능을 발휘, 승승장구 승리를 거두며 국가대표 레슬러로까지 성장해 마침내 국제대회에 출전한다.

인도 영화 하면 느끼하게 생긴 남자와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가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일명 볼리우드 영화라 하여 한 번만 들어도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이 강한 후렴구에 떼를 지어 군무를 추는 장면으로 대표된다. 볼리우드 영화는 쉽고 재미있다. 단순한 스토리에 잘 양념된 유머와 가무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볼리우드에서는 볼리우드 법을 따라야 하는 법. 개성이 강한 장르인 만큼 꼭 지켜줘야 할 특징이 몇 가지 있다. 내용상으로는 대체적으로 남녀의 연애담, 얽히고설킨 가족사 등의 통속적인 이야기로 전 연령대가 볼 수 있는 건전한 소재들로 구성되고, 세 시간을 넘는 긴 러닝타임을 뮤지컬적인 요소로 지루하지 않게 리듬감을 준다. 그중 음악은 볼리우드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다. 영화의 메인 테마송은 예고편처럼 개봉 전 오픈되는데, 메인 테마송의 성공은 흥행 성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즉 인도에서는 영화음악들이 곧 대중가요인 것이다. 뮤지컬적인 요소가 중요한 만큼 인도 배우라면 가무에 능해야 할 것 같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배우들의 노래는 모두 더빙이기 때문이다. 배우들마다 자신의 담당 가수가 있어서 본인의 목소리와 흡사한 가수가 알아서 립싱크를 해준다. 매년 1천여 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볼리우드는 편수로만 보면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시장으로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만큼 대부분의 볼리우드 영화는 세속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가끔씩 깜짝 놀랄 만한 걸작도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볼리우드를 알린 '세 얼간이' 같은 영화가 그러하다. 이번 신작 '당갈' 역시 빼어나게 재미있다. 그리고 반갑게도 '세 얼간이'의 주인공 아미르 칸이 등장한다.

'당갈'은 볼리우드 작품의 특징을 간직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소재로 세계로 진출한 인도 영화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미녀들이 춤추다가 남녀의 로맨스가 이어지는 영화가 아니다. 여성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도록 머리를 싹둑 자른 채 쫄쫄이를 입고 여자들과, 심지어 남자들과 뒹굴고 싸운다. 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의 원천에는 실화가 있다. 두 딸을 인도 최초의 국제 레슬링대회 금메달리스트로 키운 아버지 마하비르 싱 포갓과 2010년 영연방 경기대회에서 인도 여성 레슬러로는 최초로 금메달(55㎏)과 은메달(51㎏)을 획득한 기타 포갓과 바비타 포갓 자매의 실제 이야기다. 작품은 실화를 기반으로 레슬링을 이야기하면서 우회적으로 인도의 비참한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도 제기한다. 비록 아버지의 강요로 레슬링을 시작했지만 훈련 과정을 통해 '누가 따도 금메달인데, 남자가 따든 여자가 따든'이라는 대사처럼 레슬링을 매개로 주체적인 여성으로 거듭나는 두 자매를 통해 남녀 차별 문제를 부각시킨다.

촉망받는 프로 레슬러였지만 현실에 부딪혀 평범한 직장인이 된 한 가장(아미르 칸)이 있다. 그는 세계대회 금메달을 향한 자신의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 했지만 딸만 넷을 낳고는 마지막 희망까지 잃었다. 하지만 우연한 사건으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자신의 딸들이 동네 남자애들을 호되게 때린 사건으로 그는 첫째 딸 기타와 둘째 딸 바비타가 또래 남자아이를 압도하는 힘을 가진 것을 발견하고는 전율한다. 두 딸에게서 프로 레슬러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동네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가사만 하고 14세만 되어도 시집가야 하는 시골 인도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 모든 야유에도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는 독재자처럼 두 딸에게 무자비하고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결국 두 딸은 패배의 아픔과 승리의 기쁨을 맛보며 레슬링의 매력에 빠져든다. 전국대회 우승까지 거머쥔 뒤, 기타는 국가대표들만 모이는 인도 스포츠아카데미에서 훈련할 기회까지 얻는다. 그러나 기타는 선진 기술을 알려주는 새 코치와 아버지의 낡은 기술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영화 속 인도 부녀의 모습에서 자식의 성공이 곧 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핏줄 의식과 성공에 대한 집념으로 이루어낸 한국 골프 대디의 모습도 떠오른다. 박세리나 미셸 위 같은 선수들 뒤에는 이 같은 아빠가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스파르타식 훈련과 성적 지상주의로 후유증을 낳기도 했다. 당갈의 아버지는 이 시대의 이상적인 아버지상은 아니다. 보수적인 인도의 딸들에게도 아버지는 독재자처럼 보이고 밉기만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반항심이 절정에 이를 무렵 두 딸은 내적인 깨달음을 얻고 자발적으로 레슬러가 되기 위해 아버지를 찾게 된다. 두 딸을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결국 아버지였던 것이다.

'세 얼간이'를 통해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인도 국민 배우 아미르 칸의 외모 변화는 놀라움 그 자체다. 레슬러로 유망했던 시절 날렵한 근육질의 몸매부터 60대로 가며 뱃살이 늘어진 모습까지 나이에 따라 자유자재로 오간다. 이 같은 체형 변화가 특수의상이나 분장이 아닌 배우의 체중 조절로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대단하다. 또한 3천대 1의 치열한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배우 파티마 사나 셰이크와 산야 말호트라의 완벽한 레슬러 연기도 인상적이다. 누가 그 모습을 레슬링 문외한에서 트레이닝으로 이룩한 결과라고 믿을까. 실제 레슬러 중에서 배우를 뽑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실감 나는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난다. 여기에 '당갈 당갈'이라는 주제가의 후렴구가 흘러나오면 영화의 몰입도는 절정을 이룬다. 역시 볼리우드의 저력은 음악이라는 것을 입증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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