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공격하는 질병과 병을 치료하는 약을 통해 인류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괴혈병, 말라리아, 매독, 에이즈 같은 무서운 질병이 인류를 위협하면 비타민C, 퀴닌, 살바르산, 항균제 같은 약이 발명돼 방패가 되어 주었다.
책은 인류를 치명적 위기에 빠뜨렸던 10가지 질병과 인류를 구한 10가지 약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지은이는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고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10가지 약으로 ▷비타민C ▷퀴닌(키니네) ▷모르핀 ▷살바르산(매독 치료제) ▷페니실린 ▷아스피린 ▷마취제 ▷소독약(병원 위생 개선) ▷설파제(항균제) ▷에이즈 치료제를 꼽는다.
◇영국과 청나라 역사를 바꾼 비타민C와 퀴닌
대항해 시대 뱃사람들은 풍랑이나 해적의 습격보다 괴혈병을 더 두려워했다. 긴 항해 동안 수많은 선원들이 괴혈병으로 죽었고, 이 때문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뛰어난 항해 기술과 훌륭한 선박을 가졌지만 세계를 제패하지 못했다.
괴혈병이 야기하는 비극을 끝낸 사람은 영국 해군 소속 군의관 제임스 린드였다. 18세기 후반 린드는 오렌지, 사과, 레몬 등을 이용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괴혈병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린드의 괴혈병 치료제란 다량의 비타민C가 함유된 과일과 채소 위주의 식단이었다.
이후 제임스 쿡 선장은 린드가 개발한 '비타민C를 포함한 과일과 채소 위주의 식단'을 활용해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그의 위대한 항해는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꼽히는 청나라 강희제는 61년간 집권하면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마흔 살에 떠난 원정길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맸다. 그러나 운 좋게도 예수회 선교사가 진상한 퀴닌(키니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퀴닌이 아니었다면 명군 강희제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역시 명군으로 인정받는 옹정제, 건륭제 역시 역사 무대에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청나라는 물론이고 아시아의 역사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지닌 약, 모르핀
아편은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동시에 지닌 약이다. 모르핀은 아편의 주성분으로 마약성 진통제이다. 중추신경계에서 통증 자극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억제해 진통효과를 낸다.
모르핀은 중국인들의 고통을 덜어준 약인 동시에 중국인과 중국을 망가뜨린 약이기도 하다. 영국이 중국에 아편을 밀수출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이며, 19세기에 이르자 중국에서 아편 소비량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청나라 황금기였던 강희·옹정·건륭제의 통치기가 끝난 뒤 중국 관료들은 부패했고 늘어난 인구를 부양할 만한 생산성의 향상이나 제도적 대책은 없었다. 중국인들은 현실의 쾌락이나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아편을 피웠다. 영국은 청나라와 사이에 발생한 천문학적 무역적자를 벌충하기 위해 아편을 공급했고, 이는 양국의 아편전쟁으로 이어졌다.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영국과 불평등조약을 맺었고 이후 미국, 프랑스 등과도 불평등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 대륙이 서구 열강에 의해 잠식되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소독약이 더 일찍 나왔더라면 석가모니는?
마야 부인은 석가모니 출산 후 이레째 되는 날 세상을 떴다. '산욕열'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석가모니는 우울한 청년기를 보냈고 오랜 고행 끝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산욕열은 태반 박리, 출산으로 생긴 상처 등에 세균이 침입해 발생한다. 하지만 19세기 중반까지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 1846년부터 연구에 몰두한 빈대학 종합병원 의사 제멜바이스는 의료진에게 손 씻기를 명하고 속옷과 의료기구를 철저히 소독해 12%였던 병원 내 산모 사망률을 0.5%까지 끌어내렸다. 이후 영국 외과의사 리스터가 페놀 소독약을 사용하면서 병원 위생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만약 석가모니 시대에 소독약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마야 부인이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석가모니는 출가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약은 진통·소염제인 아스피린이다. 지금까지 생산량은 5천㎎ 알약 기준으로 1천억 알 분량이며, 지구에서 달까지 한 번 반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짐승이 인류보다 먼저 약을 이용했다."
인류가 약을 활용하기 전부터 동물들은 약을 이용했다. 남미에 서식하는 꼬리 감는 원숭이(카푸친 원숭이)들은 노래기(지네 비슷하게 생긴 절지동물)를 발견하면 잽싸게 잡아서 자기 몸 여기저기에 문지른다. 노래기가 방출하는 화학물질 벤조퀴논(Benzoquinone)을 몸에 바르면 뱀이나 해충 등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곤충도 약을 쓴다.
불나방 유충은 제 몸속에 둥지를 튼 기생충을 퇴치하기 위해 '약초'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녀석들은 기생파리가 제 몸에 알을 낳으면,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나도독미나리속의 독당근(Conium) 같은 독성식물을 찾아 먹는다. 독성식물을 뜯어 먹은 불나방 유충은 독초를 먹지 않은 녀석들보다 생존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고대 인류는 어떤 물질들을 약으로 사용했을까?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기원전 4000년경부터 3000년경까지 점토판에 550종이나 되는 의약품 목록을 기록해 놓았는데 놀랍게도 소똥과 말똥, 썩은 고기와 기름, 불에 태운 양털, 돼지 귀지 같은 것들이다.
그들이 '약이 아닌 것'을 '약'으로 썼던 것은 질병을 악마가 몸속에 침투해 생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약이 아닌 약'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은 '의학의 성인' 히포크라테스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251쪽, 1만6천원.
▶지은이 사토 겐타로는…
1970년 5월 8일 효고현에서 태어나 도쿄대 이과대학교 이학부 응용화학과를 졸업했으며, 도쿄공업대학교 대학원에서 유기합성화학을 공부했다. 현재 과학 전문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화학 관련 잡지에 칼럼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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