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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첫 서양식 주택 '정소아과', 시민과 다시 만난다

정필수 원장 작고 8년간 폐쇄 맏아들이 이달 소아과 재개원…낡은 간판·건물 그대로 유지해

진골목에 있는 대구지역 최초의 서양식 민간주택인
진골목에 있는 대구지역 최초의 서양식 민간주택인 '정소아과'가 폐쇄 8년 만에 다시 대구시민 곁으로 돌아온다.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해방 직후부터 60년 동안 대구 어린이들의 건강을 지켰던 중구 진골목 '정소아과'가 시민 품으로 돌아온다. 지난해 7월 작고한 정필수 원장에 이어 맏아들 정진오(70) 씨가 이달 중 소아과를 재개원하고 근대역사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정소아과 건물은 1937년 '대구 서 부자(富者)'로 알려진 서병직이 화교 건축가 모문금의 도움을 받아 중구 남일동 141번지에 지은 대구 최초의 서양식 민간주택이다.

고 정필수 원장은 1947년 이 건물을 매입해 소아과를 개원했다. 정소아과는 625전쟁 전후 대구를 배경으로 한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에 등장할 정도로 대구 시민들이 자주 찾던 병원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겪으면서도 당시의 형태를 거의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어 당시 상류층의 주거문화와 건축양식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러나 60년 이상 이곳에서 진료를 하던 고 정필수 원장은 지난 2009년 병원 문을 닫았고, 지난해 9월 작고하면서 정소아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8년간 굳게 닫혔던 정소아과의 문은 이달 중에 열릴 예정이다. 정 원장의 맏아들이자 역시 소아과 전문의인 정진오 씨가 최근 근무하던 병원에서 퇴직한 뒤 부친의 뒤를 이어 소아과를 개원하기로 한 것이다.

정 씨는 낡은 간판과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며 부친의 유지를 이어갈 생각이다. 정 씨는 "나고 자란 이곳에서 아버님의 유품도 관리하고, 옛 손님들이 찾아오면 진료도 보는 등 정소아과의 간판을 유지하기로 했다"며 "어릴 적 기억을 토대로 건물을 복구하고, 아버지가 남긴 서류 등 유품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건물 정비가 마무리되면 부친의 기일인 9월 17일 이후부터 건물 1층을 시민들에게 개방할 계획이다. 옛 소아과에 남은 갖가지 도구들과 서류를 전시해 대구와 진골목의 역사를 상징하는 장소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 씨는 "대구와 진골목을 상징하는 유서 깊은 건물인 만큼 언젠가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내가 이곳에 있는 한 정소아과의 간판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중구청 관계자도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은 건물이지만 문화재 등록도 돼 있지 않고 주변 상가가 활성화돼 원형 보존이 어려울 것으로 우려했다"면서 "중구 근대문화의 대표적 건물인 만큼 보존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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