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代가 함께 만든 집안 5代 가족사…『지나간 것은, 다 그립고 눈물겹다』

지은이 윤이조
지은이 윤이조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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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것은, 다 그립고 눈물겹다/윤이조 지음/이현승 그림/아인아이엠씨 펴냄.

85세인 지은이가 76년 전(1942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향산 윤상태 선생)를 떠올리며,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어린 시절 추억, 생활 속에서 경험한 일제강점, 해방과 6·25전쟁,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 가슴 졸였던 날들, 엄마로 또 아내로 살았던 날들을 기록한 책이다.

지은이 윤이조 여사가 글을 썼고, 초고(草稿)를 읽은 대학교 4학년 손녀(이현승)가 삽화를 그렸다. 지은이의 며느리가 책을 쓰시라 권하고 전체 기획을 맡았으니,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집안 5대(代)의 이야기를 3대가 함께 책으로 만든 셈이다.

전체적으로 담백하고 꾸밈이 없으며, 술술 읽을 수 있게 써 내려간 책이다. 자기 인생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펴내고 싶지만 책 쓰기에 막막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참고해도 좋겠다.

◇"글 쓰는 일은 나하고 상관없다 여겨"

지은이는 "주변에서 '남는 것은 글뿐이다. 자서전이든 수필이든 글을 써보시라'고 권하곤 했지만, 글이라고는 SNS로 친구들과 나누는 문자 정도밖에 없어 글쓰기는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여겼다"고 말한다.

"지난해 10월 초, 아들의 생일 때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다가 옛날이야기가 나왔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할아버지를 따라가 혼마치(本町·지금의 대구시 중구 서문로)의 백화점에서 돈가스를 처음 먹어봤는데 그 이후로 그렇게 맛있는 돈가스는 먹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자연스럽게 당신의 독립운동 이야기로 이어졌고, 옆에 앉아있던 며느리가 그 기억들을 글로 써보시라고 권했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홉 살 아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

책에는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할아버지 윤상태 어른과 관련한 추억이 많지만, 그렇다고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사는 아니다. 윤상태 선생의 독립운동에 관한 기록은 '부록'에 연혁과 재판 기록, 논문 발췌 형식으로 따로 정리하고 있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홉 살 소녀답게 사소하고 단편적이다. 지은이에게 할아버지는 손녀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손녀 손을 잡고 참석하시는 자상한 분, 아이들이 방학을 맞이하면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아이들까지 모두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돈가스를 사 주시는 다정한 사람이다.

할아버지가 일제 경찰에 당한 고초를 아홉 살 손녀는 이렇게 기억한다.

"할아버지는 회사를 운영하셨는데, 1942년 어느 날 갑자기 경찰에 잡혀가셨다. 회사를 거점 삼아 독립자금을 중국 상해로 보내는 것을 어떤 사람이 고발했고, 경찰에 잡혀가서 고문을 받았다. 회사를 빼앗기고 온 몸이 축 늘어진 채 풀려나셨다. 그 뒤로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그해 세상을 떠나셨다."

◇창씨개명하지 않아 내 성(姓)은 한 글자

일제강점기를 기억하는 방식 역시 아이답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나 거창한 독립운동 이야기는 없다.

"학교에서 우리말을 쓰면 벌을 받았다. (소학교) 일학년 겨울, 아주 추운 어느 날 손이 시려 뒤에 앉은 친한 친구를 돌아보며 '춥다'고 했는데, 이 친구가 발딱 일어서더니 '선생님 아무개가 조선말을 썼어요'라고 일러 바쳤다. 깜짝 놀라 선생님 얼굴을 쳐다봤더니 선생님은 빙긋 웃으시면서 '그 말을 일본어로 못 하겠더니' 하시고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그 선생님은 조선인 여선생님이셨다. 그날 이후 (고자질한)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지은이는 "친구들은 창씨개명을 해서 성(姓)이 두 글자였지만, 우리 집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 내 성은 한 글자였다. 왜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내 성은 한 글자일까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우리말을 쓰는 게 금지됐고, 집에서는 일본말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잘 아는 일본 노래도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며 그 시대를 (듣거나 일부러 공부한 내용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대로 묘사한다. 그러면서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 어른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나는 모른다"고 덧붙인다.

◇피 묻은 군복 빨래…방천이 온통 핏물

이 책은 개인사이자 듬성듬성 쓴 가족사다. 거대 역사가 아니라 개인사를 기록한다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6·25전쟁 당시 여중생이었던(당시 6년제) 지은이에게 닥친 전쟁은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6·25와 다르다.

"서울 수복 후 피란지 부산에서 돌아와 다시 학교에 다녔는데, 그때부터 일선에서 실어오는 군인들의 피 묻은 군복을 방천(지금의 신천)에 가서 빨았다. 빨래를 해본 친구가 몇이나 있었겠는가. 비누도 귀한 시절이라 방망이로 두들겨야 하는데, 방망이가 없어 매끈하고 납작한 돌을 찾아 방망이 대신 돌로 두들겨 빨았다. 방천물이 핏물이 되어 흘렀다. 우리나라 젊은이들, 온 국민들의 핏물이었다. 또 굵은 실로 군인들 입을 스웨터를 매일 밤을 새워 한 벌씩 짜서 내었고, 제일교회(대구시 중구 남성로)에서 필(疋)로 된 베를 찢어 붕대를 만들고 삼각붕대도 만들었다. 드넓은 교회 강당이 베를 찢느라 뿌연 먼지로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58, 59쪽-

"중공군 참전으로 1·4후퇴를 하면서 피란민들이 밀려와 집집마다 피란민을 받아야 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사람들이 다른 일을 찾아 자리를 잡아 나갈 때까지 우리는 같이 살았다."-60쪽-

◇"그리운 것은 그리운 것일 뿐이다"

문장은 겉치레가 없고 담백하다. 문장뿐만 아니라 인생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시선 역시 고요하다. 그는 "지나간 것은 다 그립고 눈물겹다"면서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80년을 훌쩍 넘는 세월을 뭘 하고 살았나 싶기도 하고, 긴 세월 잘도 살아왔구나 싶을 때도 있고, 좀 더 보람 있는 일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옛날이 그리운 것은 그냥 그리운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리움이 없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할까. 그리움이 우리 영혼을 적셔주는 윤활유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것은 다 그립고, 눈물겹고, 소중한 추억이다. 지금은 내 아이들이 잘 살아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가 30년이 넘었어도 남쪽이 환히 트여 있고 수목이 많은 여기가 나는 좋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잊혀질 날이 오겠지만…."-88쪽-

▶지은이의 할아버지, 향산(香山) 윤상태(1882~1942)는…

구한말의 관리로 거제군수를 역임했다. 일제의 국권침탈이 거세지자 군수직에서 물러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으며, 1942년 6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독립운동에 몸담았다.

일제가 조선을 합병하자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조직해 일제에 맞섰고 마산, 창원 지역의 3·1운동을 이끌었다. 1911년 고령에 일신학교를 설립, 일반 과목 외 군사와 국사 등을 가르치며 국권회복운동을 펼쳤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를 작성하고, 영문으로 번역했다. 1921년 달성군 월배면에 사립 덕산학교를 설립하고, 1932년 조선청년 교육을 위해 교남학교(현 대륜고)설립에 참여했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131쪽, 1만5천원. 053)761-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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