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버지 오랜 노하우에 감각 더하니 막걸리맛 좋아져" 3대째 전통주 맥 잇는 울진술도가

홍진영 씨 건강 문제로 운영 고민, 아들 시표 씨 사표 내고 가업 이어
아버지의 노하우와 아들의 젊은 감각이 빚어낸 감로주

지역 전통 명주의 맛을 3대째 이어가고 있는 홍순영(오른쪽)
지역 전통 명주의 맛을 3대째 이어가고 있는 홍순영(오른쪽)'시표 부자가 낡은 양조장을 새롭게 리모델링한 '울진술도가' 정문 앞에서 서로를 보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오전 5시 홍시표(40) 씨가 막걸리가 그득 담긴 술통을 휘젖고 있다.

누룩을 충분히 발효 하려면 주걱을 쉴 틈이 없다.

쌀쌀한 새벽 공기에 몇십분이고 주걱을 휘젖노라면 금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잠시 주걱질을 멈추고 냄새를 맡아보니 제법 그럴듯한 향기가 난다.

하지만, 그런 시표씨의 뒤에서 사뭇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는 노인이 있다.

바로 아버지 홍순영(76)씨다.

홍 씨는 아들의 손에서 주걱을 뺏으며 일흔 노인의 힘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술통을 힘차게 휘젖는다.

"힘없이 저으면 술이 굳는다 아이가. 밑바닥까지 열심히 저어야지"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양조길로 뛰어든지도 어느덧 8년차.

그런 시표씨도 아버지가 보기에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넘쳐나는 아이같다.

이렇게 매일 부자가 함께 옥신각신 술을 빚으며 '울진술도가(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의 술은 3대째 전통의 맛을 이어오고 있다.

울진술도가가 처음 문을 연 것은 1920년.

당시 공무원을 하던 시표씨의 할아버지가 동네 양조장이 문을 닫자 지역 대표 술이 사라지는게 아쉬워 인수했던 것이 시초이다.

이후 장남에게 물려줬으나 건강 악화로 쓰러지자, 초등학교 교사였던 둘째 홍씨가 직장을 접고 가업을 이어 받았다.

대형 주조공장이 들어서고 지역 소규모 전통술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그래도 순영씨는 망해가던 울진지역 양조장들을 차례로 통합하며 전통을 지키려 애썼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했던 술맛을 지키고 보전하고자 한 마음이 전부였던 탓이다.

그런 홍 씨도 처음 시표씨가 잘 나가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술을 빚겠다고 했을 때는 호통을 칠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야 양조장하면 부자라고 했지만, 요새는 어디 그런가요. 너무나 힘들고 돈이 안되는 일이라 아들에게만은 차마 권할 수 없었죠."

완강했던 홍 씨였지만, 2011년 심혈관 질환으로 쓰러지자 애써 지켜온 전통이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이 왈칵 들었다.

의사로부터 '준비를 해야겠다'는 경고를 듣고는 시표씨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 생각이 있으면 막걸리를 하라"고 애둘러 승낙을 전했다.

다음날 곧바로 사직서를 낸 시표씨는 그날부터 전통주를 만드는 일에 매진하며, 전통주의 고리타분함을 타파하는 일에 애썼다.

아버지의 오랜 기술에 더해 젊은이의 감성으로 상표와 포장을 바꾸고, 관광객들에게 전통주 만들기 체험을 제공하는 일은 시표씨의 아이디어다.

부자의 노력으로 울진술도가는 지난 2013년 7월 경북도의 지원을 받아 낡은 도가를 허물고 새로운 지역 대표 명주로의 도약을 하고 있다.

울진술도가 부대표 홍시표씨는 "아직을 술을 만들 때마다 맛이 변한다는 쓴소리를 조금 듣는다. 아직 아버지의 기술을 따라가려면 먼 것같다"며 "주점형 소규모 양조장이나 체험장을 설립하는 등 젊은 감성에 발맞춰 지역 대표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싶다. 그때까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손맛을 열심히 배워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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