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미움이여, 안녕!

내가 처음 본 김일성의 얼굴은 오동통한 우량아의 얼굴이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보릿고개가 있었고, 우량아 대회도 있었다. 얼마나 먹고 살기가 힘들었으면 요즘 시각으로 보면 영락없는 비만아를 건강의 상징처럼 여기고 상까지 주었을까? 김일성의 살진 얼굴이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정치 프로파간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그들은 그런 식으로 김일성의 얼굴을 상징화했다.

박병욱 목사
박병욱 목사

금강산 관광을 갔을 때 본 풍경이다. 북한 마을 입구에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같은 모양의 기둥을 높이 세우고 이렇게 써 놓았다. "위대한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성경의 예수님 말씀을 흉내 낸 문구다. 이쯤 되면 김일성은 예수님 급이다. 요즘은 이 구호에 '김정일 동지'가 첨가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북한에서는 김일성 '신격화'가 진행되었다.

남한에서는 김일성 '악마화'가 진행되었다. 군대 내무반 벽에 그려져 있는 김일성의 얼굴은 뿔이 난 빨간 도깨비였다. 그리고 집합을 하면 예외 없이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구호를 반복해서 외쳤다. 우리는 미국에서 구호 물자로 온 딱딱한 옥수수 빵을 씹으며 마을회관, 면사무소, 학교 등 관공서 담벼락에 써있는 이 구호를 읽었다.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반공 글짓기 대회, 반공 그림 그리기 대회를 했다. 이때 '공산당, 김일성'은 반드시 빨간색 크레용을 쓰는 것이 공식이었다. 일 년에 한 번 반공 웅변 대회를 하면 어린 학생들은 소리 높여 부르짖었다. "공산당을 때려잡자."

이렇게 북한에서나 남한에서나 김일성 종교화가 진행된 것은 마찬가지다. 북한에서는 신의 모습으로, 남한에서는 악마의 모습으로 종교화된 것이다.

남한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종교화된 증오였다. 북한에 강한 증오심을 가질수록 증오종교의 진골 선봉자로 높임 받는 세상이었다. 많이 미워할수록 증오종교의 헌신자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기독교 지주계급은 종교적 경제적 이유로 공산정권에 의해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그들의 아버지가 제대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잔혹하게 처형당하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보아야 했다. 평생을 지고가야 하는 고통이었다. 악마가 아니고는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김일성과 공산당 정권은 악의 화신을 넘어 악 그 자체였다. 북한 지역에서 소위 유산자 계급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또한 6·25의 참상은 어떠했는가? 형편이 이러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공산당에게는 예외조항이었다.

우리 사회에 분노와 적개심이 왜 이렇게 많은가? 왜 사람들은 내편과 적을 만들어 놓을까? 누구든 증오하도록 만들어진 결과다. 증오의 종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집단적 트라우마가 분노와 적대감의 씨앗으로 심겨져 남한 사회에서 증오의 싹이 돋아나고 증오의 열매가 맺혀가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분열의 씨앗이다.

우리는 정전 이후 65년을 지내오면서 트라우마가 주도하는 삶만을 살아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경제 발전도 이루었고, 민주화도 이루었고, 지구촌 이웃의 살아가는 모습도 보았고, 지구촌 인류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법도 배웠다. 선진국 국민으로서의 교양도 익혔다.

전쟁의 원한이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여전히 분단의 시대에 붙잡혀 있다면 불행한 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분단의 시대를 끝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여전히 증오의 종교를 섬긴다면 불행한 일이다. 증오의 종교도 사라져라. 증오의 시대여 떠나가라. 빨리 새 시대가 열렸으면 좋겠다. 사랑의 종교로 돌아가야 한다. 빨리 돌아가자.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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