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생체 시계

얼마 전 우리나라 국보 중 가장 오래된 유적인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보고 왔다. 국보 제285호이기도 한 반구대 암각화는 지구 상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유적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여러 시기에 걸쳐 새겨진 고래, 호랑이, 사슴, 거북이, 물고기, 사람 등의 다양한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등을 볼 수 있었다.


반구대 유적에서 보듯이 인간은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생체 시계에 의존하여 수 천 년을 지내왔다. 그러나 현대 도시인은 생체 시계에 의존하지 않고 문명의 발명품인 '시계'라는 기계에 예속되어 생활하고 있다.


인류 문화사에서 세상을 바꾼 발명과 혁신이 여러 번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아마도 시간을 측정하는 기구인 시계일 것이다. 시계를 기계적 수단을 통해 시간을 일정한 간격으로 나타낸 장치로 정의하면, 17세기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루이스 멈퍼드는 그의 저서인 '기술과 문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규칙적인 종소리는 직공과 상인의 삶에 새로운 규칙성을 부여했다. 시계탑의 종은 도시의 생활양식을 규정하다시피 했다. 단순한 시간 기록은 점차 시간 엄수, 시간 계산, 시간 분배로 발전했다. 한때 인간 활동의 잣대이자 초점이었던 영원성은 그 역할을 서서히 그만두게 되었다.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야말로 근대 산업시대의 핵심적인 기계였다"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런 기계 시계에 예속된 생활은 인간에게 이롭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작년 노벨생리의학상은 생체 시계의 비밀을 밝혀낸 미국의 과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생체 시계는 인간의 행동, 호르몬 수위, 잠, 체온, 신진대사와 같은 아주 중요한 기능을 통제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따라서 인간의 건강도 외부 환경과 체내 생체 시계 사이의 일시적인 부조화가 있을 때 영향을 받는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생체리듬은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에서 관찰되고 각 개체의 장기 안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따라서 생체 시계가 고장이 나면 즉각 호르몬대사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 결과 수면 장애는 물론 심혈관계질환, 당뇨와 같은 대사성 질환, 치매와 같은 퇴행성 신경계 질환, 종양질환 등이 발생할 위험성이 높아진다.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이런 현대인의 만성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매일 지구 자전주기에 맞춰 우리 몸속 주기유전자가 24시간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가장 자연스럽고 좋기로는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낮에는 맑게 깨어 있고, 밤에는 깊이 숙면을 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낮에 졸고, 밤에 활동하는 생활을 반복하는 건 생체시계의 오작동을 유발해 낮밤의 구별이 없어지고 몸도 병드는 빌미가 된다.


여러 여건상 대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현대인이 생체리듬에 부합되는 생활을 하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처지에 맞는 본인만의 생체리듬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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