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축구의 정치학

2018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러시아만큼 축구 열기가 뜨거운 곳도 드물다. 러시아 대표팀의 FIFA 세계 랭킹은 70위로 한국(57위)보다 낮지만, 축구에 열광하는 정도는 비할 바가 아니다. 국내 리그에 수시로 폭력 사태가 일어나고, 훌리건은 폭력성과 인종차별로 세계적인 악명을 얻고 있다.


러시아 축구가 폭력적인 이유는 러시아 축구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러시아 축구 발전에 가장 공헌한 인물이 비밀경찰 총수 라브렌티 베리야(1899~1953)였다. '도살자' 베리야는 공동체 의식 강화와 체제 유지를 목적으로 '디나모 모스크바'라는 축구 클럽을 창설했다. 공화국마다 '디나모'(Dynamic) 이름을 붙인 축구팀을 창설하고, 비밀경찰이 운영했다. 독재자 스탈린이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베리야는 '디나모 모스크바'를 무적의 팀으로 만들었다.


'디나모 모스크바'는 창설 첫해 48경기를 벌여 전승을 했다. 전반전에 0대3으로 뒤지고 있었는데, 베리야가 로커룸에 들어가 선수들에게 '총살하겠다'고 위협한 뒤 4대3으로 역전승한 사례도 있다. 당시 '디나모 모스크바'의 라이벌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였는데, 창립자이자 선수였던 니콜라이 스타로스틴과 3명의 동생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죄목은 어이없게도 스탈린 암살 기도였다. 이들은 수용소에 수감된 탓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고, 1953년 베리야 실각 후 축구계에 복귀해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황금시대를 개척했다.


KGB(국가보안위원회) 후원하에 '디나모 모스크바'는 국내 리그 우승 11회를 차지하는 최강 팀으로 군림했으나 1991년 소련 붕괴 후 이류팀으로 전락했다.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야신(1929~1990)도 '디나모 모스크바'에서 뛰었는데, KGB 대령까지 진급했다.


KGB의 축구 사랑 전통을 이어받은 푸틴 대통령이 월드컵을 유치한 이유도 상당히 정치적이다. 푸틴의 통치하에서 부흥하는 러시아를 널리 알리는 기회로 삼기 위해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한 히틀러를 연상시킨다. '러시아가 월드컵에 지더라도 푸틴은 승리할 것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