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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대구 수돗물 발암물질' 논란

매일신문 사회부홍준헌 기자
매일신문 사회부홍준헌 기자

2016년 대구 한 조미료 제조업체는 자가품질검사 결과 업소용 제품에서 특정 물질이 평소보다 소폭 늘어 기준치를 초과한 것을 알았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지정 발암우려물질(2B등급)의 한 종류로, 인체 유해성 자료와 동물 실험 자료가 불충분하지만 엄격히 관리하기를 권고하는 물질이다. 업체는 소비자 개봉 전에 문제 제품을 전량 회수했고 보건당국에도 자진 신고했다.

이 사실을 알린 뉴스 속 '발암'이라는 단어는 업체의 일시적 매출 하락을 불러왔다. 오늘날 암은 불치병에서 난치병으로 다소 격하됐지만, 시민 인식에는 여전히 '암=죽음'의 등식이 뿌리 깊다.

2년이 지나 최근 대구 한 방송사가 "대구 수돗물에서 신종호르몬, 발암물질이 다량 검출됐다"고 단독 보도했다. '발암 수돗물' 공포에 전국 언론이 따라붙어 기사를 쏟아냈다. 환경 담당 기자인 내게는 '물먹었다'(특종을 놓쳤다)는 낭패감도 더했다. 다만 취재를 거듭할수록 '정말 이처럼 심각하게 위험한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지난 1년간 낙동강 수계 정수장에서 검출된 과불화옥탄산은 2B등급 물질인데다, 검출량이 일부 국가의 먹는 물 수질기준치에 한참 못 미쳐 유해성을 논할 수 없었다. 함께 발견된 신종 환경호르몬(과불화헥산술폰산, 비발암물질)은 몇몇 국가의 먹는 물 수질기준 권고치보다 다소 많이 검출돼 우려할 만했다.

그러나 먹는 물 수질기준은 사람이 매일 2ℓ씩 평생 물을 마셔도 안전한 수준에서 정한다. 유해성이 명확지 않은 물질은 나라마다 기준을 두지 않거나 권고치만 둔다. 극미량(1ℓ에 최대 0.000454㎎)씩 검출된 점, 권고치의 구속력이 강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그 역시 위험성을 지적하기 주저됐다. 과불화화합물이 든 물을 끓이면 농도가 더 높아진다지만, 세균이 아니고서야 끓여서 물이 줄면 함량비가 높아지는 것은 상식이다.

환경부가 사실을 고의로 숨긴 것도 아니었다. 환경부는 이미 지난달 30일 "전국 수계에서 검출량이 늘고 있는 과불화화합물을 먹는 물 수질 감시 항목에 포함해 관리하겠다"며 각 수계의 검출량과 국제수질기준(권고치)을 밝혔다. 여러 정황을 고려해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 중요시하지 않았을 뿐이다.

'발암'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앞선 보도를 따라갔다가 시민들에게 공포심을 키우기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했다. 그렇기에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점에 일단 안도하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자 했다.

한편, 정보를 쥐고 있으면서도 최초 보도 이후 하루 동안이나 해명을 미룬 대구시의 대응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각에선 '울고 싶던 대구시, 뺨 맞았다'는 음모론도 나온다. 대구시는 취수원 구미 이전에 무게를 싣고 있는데, 이전에 성공하면 그간 제한받던 지역개발과 수질규제에서 자유로워지니 늑장 해명을 하면서까지 이번 사태를 노림수 삼았다는 의혹이다.

안전한 수돗물을 안전하다고 하지 못한 대구시 대응이 행정 불신만 키웠다. 조미료 업체는 작은 문제에 재빨리 대응하고도 신뢰 회복에 한참 애먹었다. 대구시의 신뢰 회복력이 그에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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