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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빈의 시와 함께]빈집/ 유가형(19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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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 대문

우루루 뛰어나와 안기는 고요

정강이에 뚝 부러지는 기억

끈적끈적하게 묻어나는 아린 추억

풀쩍!

고욤나무에 앉아 있던 늦은 하오

 

아무도 없나요?

모두 무덤에 갔나요?

고요가 짓이겨져 퍼렇게 일어서고

짙은 그림자가 감나무로 빠르게 오른다

 

수단 이불 밑

젊은 어머니 소죽솥에 아이들 뒤꿈치

가마니처럼 기우신다

 

아무도 없어요?

글쎄 다 돌아가셨나요?

 

마당귀에 날카로운 사금파리

증발하지 못한 슬픔

 

―시집 『나비 떨잠』 (그루, 2017)

 

* * *

 

언제부턴가 텅 빈 옛집을 고요가 지키고 있다. 고요가 빈집의 주인이다. 삐걱거리는 대문 열어젖히면, 뜰아래 잠자던 고요가 맨발로 뛰어나오고, 정강이 부딪히던 아픈 기억의 모서리가 뚝 부러지고, 가난살이의 끈적끈적한 추억이 묻어난다. 하지만 정작 “소죽솥에 아이들 뒤꿈치” 깁던 “수단 이불 밑 젊은 어머니”는 어디 꼭꼭 숨었는지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나요?/ 모두 무덤에 갔나요?” 가족이 해체된 빈집의 고요를 이렇게 ‘죽음’의 그림자나 ‘무덤’의 이미지로 포착해 내다니! 한때 온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살아 웃음소리 넘쳐나던 집이었으나, 이제는 수다식솔이 타관객지로 뿔뿔이 흩어지고 터줏대감마저 북망산천으로 떠나가 버린 빈집! 해마다 불청객 장마가 찾아와 빈집 털고 가고, 마당귀 장독대에 늘비한 사금파리가 “증발하지 못한 슬픔”으로 남아 있다. “아무도 없어요?/ 글쎄 다 돌아가셨나요?” 깊은 적막의 숨소리가 빈집 곳곳에서 새어나온다.

. 시인 · 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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