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부모 교육, 부모됨의 길을 묻다 ]'심(心)부름'의 회복을 꿈꾸며

권택환(대구교대 교수)
권택환(대구교대 교수)

'덕선아, 이거 옆집에 갖다 드려라. '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귀찮아하면서도 어머니의 부름에 대답하고는 떡이며 반찬을 들고 옆집으로 간다. 이제는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장면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심부름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공부가 채워지고 아이들의 요구가 들어왔다. 자녀의 부름에 부모가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가 건네주신 찐 감자 바구니를 들고 찾아간 윗집 할머니는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내 손을 잡아주셨고 숨겨두었던 사탕 한 알을 내어 주셨다. 내 눈에 비친 할머니의 집은 궁핍했고 그런 할머니께 귀한 감자를 나누는 어머니가 어린 마음에도 좋아보였다.

가게 아저씨께 뭐라고 말씀드리나? 거스름 돈은 어떻게 받지? 걱정과 달리 무사히 두부를 사서 기분 좋게 뛰어오다 넘어진 기억도, 심부름으로 사오던 막걸리를 목이 말라 마셔보았던 일들도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내 이름을 부르며 "택환아, 교무실에 가서 분필 한 통 가져와"'라는 선생님의 심부름은 선생님이 내게 주시는 상이었다.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 속에 교무실로 가면 분필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었다. 두려움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의 세상을 엿보았던 경험은 낯선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교무실 칠판에서 본 소풍 날짜는 나만 아는 특별한 정보이며 자랑이기도 했다.

이렇게 심부름은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기회였고 설레는 일이었다. 이제는 그런 심부름이 없어졌다. 돈과 권력을 이용한 갑질과 심부름은 다르다. 심부름은 마음을 담아 자녀와 제자를 부르는 목소리이다. 심부름을 통해 자녀는 부모의 삶을 배우고 제자는 스승의 신뢰를 확인한다.

내일이 시험이어도 동생 약을 사오는 심부름을 하며 자란 아이는 부모가 돌아가신 먼 훗날에도 동생과 우애 있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자녀는 부모의 잔소리로 자라는 것이 아니고 부모의 태도를 보고 자란다. 마음으로 부르는 소리, 심(心)부름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부모의 나눔, 책임, 사랑, 인생의 가치에 대해 배우게 된다.

초등학교 때 학교 앞 선생님 자취방에 심부름을 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심부름은 선생이 제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고 신뢰의 표시이다. 선생은 심부름을 통해 제자의 성공이 아닌 완성을 꿈꾼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심부름을 회복해야 할 때다.

'너는 이런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잘해.'라고만 하지 말고 마음으로 자녀를 불러주자. 그것이 인성교육이고 인간성 회복의 길이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다만 마음으로 아이들을 부르는 어른이 없을 뿐이다. 부모가 먼저 마음을 다해 아이들을 불러야 한다. 어른이 부르지 않으면 그들은 응답할 수 없다. 심부름을 통해 아이들이 온전한 어른으로 완성되어 감을 기억하자.

마음을 담아 자녀를 부르는 것은 교육이며 사랑이고 마음을 다해 응답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이다.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마음으로 부르는 심(心) 부름에.

권택환(대구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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