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방학 맞은 가정 스마트폰과의 전쟁] 동영상 보는 데 하루 5∼6시간…성적 곤두박질

대화 단절에 고성 오가... 가정 불화의 '불씨', 기기 부수고 던져도 안 고쳐져

초등학생 때 사 준 스마트폰. 고교생이 된 아이는 지금도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떨어진 시력, 안 오르는 성적, 참을성 없는 성격...스마트폰이 미워집니다. 분실신고에다 사용정지도 수십번.
초등학생 때 사 준 스마트폰. 고교생이 된 아이는 지금도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떨어진 시력, 안 오르는 성적, 참을성 없는 성격...스마트폰이 미워집니다. 분실신고에다 사용정지도 수십번.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왜!" 점점 어긋나는 아이의 모습에 부모는 또 무너집니다. "용돈 더 줄게…" 당근책으로 겨우 폴더폰으로 바꿨지만, 방학을 맞은 아이는 여전히 엄마 폰으로 까만 밤을 지샙니다. 김태형 기자 thkim21@msnet.co.kr

최근 여름방학과 유례없는 무더위가 겹치면서 인터넷·스마트폰을 두고 부모와 자녀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지고, 유아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가 급증하면서 인터넷·스마트폰 의존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 인터넷·스마트폰 중독은 가족 간 소통, 학업 등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쳐 가족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개인의 문제로 국한해선 안 되며 가족 구성원간 대화 및 관계 개선을 통해 인터넷·스마트폰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관심을 돌리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가정 불화의 씨앗 된 인터넷·스마트폰

박모(45) 씨는 지난해 중학교 1학년 아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준 뒤 자녀와의 대화 시간이 부쩍 줄었다. 박 씨의 아들은 한동안 스마트폰 게임과 SNS에 빠져 지내다 최근에는 유튜브 인기 영상을 보는 데만 하루 대여섯시간을 쓰고 있다. 혼자 있을 때는 물론 밥 먹을 때와 화장실 갈 때, 자기 직전까지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다 잠들 정도다.

박 씨는 "하루는 학원 선생님이 '애가 안온다'며 전화가 왔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학원 시간을 깜빡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헛웃음이 났다"며 "평소 반에서 10등 정도 하던 아이가 갑자기 20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아와 휴대전화 압수를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고 했다.

부모가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문제를 해결하려고 갖은 방법을 쓰고 있지만, 자녀와 갈등의 골만 깊어진 경우도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이지훈(49) 씨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을 두고 딸과 매일같이 집에서 싸움을 벌인다. 이 씨의 딸은 얼마 전 인기 아이돌 그룹에 빠지면서 컴퓨터, 스마트폰과 붙어 있는 시간이 늘었다. 아이돌 그룹의 텔레비전 출연 영상에서부터 커뮤니티에 팬들이 찍어 올린 사진, 영상 등을 일일이 챙겨본다. 버릇을 고쳐주려고 '인터넷은 하루 1시간' '밥 먹을 때 스마트폰 사용 금지' 등의 규칙을 정해봤지만,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던지고 부수면서까지 아이에게 협박을 해봤지만, 효과는 잠시뿐이었다.

이 씨는 "가족끼리 외출을 해도 아이는 와이파이를 찾아다니느라 부모는 안중에도 없다. 외출할 때 스마트폰은 집에 두고 가라고 하면 또 싸움이 일어난다"고 토로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가 자극적인 영상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게 염려스럽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정모(41) 씨는 아들의 성화에 스마트폰을 건네주지만 영상의 잔인한 말투와 행동에 영향을 받을까 봐 걱정이 많다.

정 씨는 "얼마전 아이가 메뚜기 분해, 동물 학대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욕설을 그대로 따라해 충격을 받았다. 어른들의 제재가 없으면 아이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어 더욱 문제"라고 말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스마트폰'

스마트폰을 두고 일어나는 갈등은 영유아 자녀를 둔 가정에서도 남 일이 아니다.

한모(37) 씨의 유치원생 아들은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지 않으면 밥 먹기, 양치질 등을 거부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어린 시절부터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조용히 시켜야 하거나 부부가 바쁠 때마다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나 BJ(인터넷 방송인을 이르는 말) 영상을 보여준 게 화근이었다.

한 씨는 "신생아 때부터 영상만 보여주면 바로 울음을 그치고 부모 통제에 잘 따라 편리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후회한다. 스마트폰에 눈길이 가 있는 아이에게 밥숟가락을 넣어 주고 있자니 이게 뭐 하는 건가 싶다"고 말했다.

최지혜(29) 씨의 30개월 된 딸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 스마트폰이다. 최 씨는 요즘 아이가 화면을 터치해 스스로 영상을 찾아보는 행동 자체에 가장 흥미를 보여 걱정이다. 장난감, 사운드 북, 그림책 등으로 주의를 돌리려 해도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다. 최 씨는 "자녀 앞에서 무심결에 스마트폰을 사용했는데, 아이가 그대로 보고 배운 것 같다. 아이의 고른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