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김홍도 馬上聽鶯
신록이 짙어가고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늦봄 어느 화창한 날에 젊은 선비가 봄기운을 만끽하러 길을 나섰다. 그런데 말을 타고 가던 선비가 길가 버드나무 위에서 꾀꼬리 한 쌍이 화답하는 소리를 듣고는 넋을 빼앗긴 채 바라보고 있다. 조선후기 최고의 풍속화가 김홍도가 봄날의 흥취에 빠져있는 선비의 순간을 사생한 작품이다.
꾀꼬리의 화답 장면과 넋 나간 선비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려는 듯 버드나무는 간결하게 처리하여 길섶 한곁으로 몰아 놓았다. 그리고 선비 일행을 큰길 가운데로 내세운 채 나머지는 모두 하늘로 비워두었는데, 김홍도의 대담한 구도 감각이 엿보인다. 말을 모는 떠꺼머리 총각과 함께 선비의 옷주름은 김홍도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선으로 처리하여 넉넉하면서도 빳빳한 조선옷의 맵시를 유감없이 표현했다. 반면 갓과 말 그리고 길섶의 풀들은 먹의 번짐으로만 표현했는데, 인물 표현과 대조를 이루어 조화를 얻으려는 의도인 듯하다.
그림의 왼편 상단에는 김홍도와 동갑의 그림 친구였던 이인문(李寅文)이 제화시를 적었다.
"아리따운 사람이 꽃 밑에서 천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하고,
시인의 술동이 앞에 황금귤 한 쌍이 놓인 듯하다.
어지러운 금북(북은 베짜는 도구)이 버드나무 언덕 누비니,
아지랑이 비섞어 봄강을 짜낸다."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처럼 낭창낭창 흐드러진 글씨가 그림의 구도와 운율에 맞춰 농도를 조절하며 사선(斜線)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시와 그림의 조화가 절묘하다. 김홍도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가다운 조형감각이다.
봄날의 고즈넉한 풍광과 선비의 고아한 풍류, 그리고 봄의 소리까지, 김홍도의 풍속화를 대표할만한 최고의 작품인데, 그림 속 선비가 어쩌면 김홍도 자신의 모습일지 모르겠다.
오세현(간송미술문화재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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