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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들러리' 대기업 총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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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검토해 보겠습니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대기업 총수들에게 부하 직원들이 한 말이다. 별 의미 없이 한 발언을 북한이 긍정적인 뜻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염려에서 이런 조언을 했다. 북한 거래 기업을 제재하겠다는 미국의 뜻이 확고한 시점에 괜한 발언을 했다가 기업에 불똥이 튈 것을 걱정한 측면도 있다.

평양 방문에 삼성 현대차 SK LG 포스코 등 대기업 총수들과 최고경영자들이 대거 동참했다.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일을 할 만큼 바쁜 이들이 2박 3일 일정으로 한꺼번에 평양을 찾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수행원 한 명 없이 가방 하나 들고 평양 출장에 나선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청와대는 경제인들의 방북은 전적으로 정부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한 반면 북측 인사들은 "우리가 오시라고 했다"며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 남과 북에서 엇갈린 얘기가 나온다. 대기업들에 대해 어느 정부보다 강한 전방위 압박이 한창인 상황에서 정부의 방북 동행 요청을 거절할 대기업 총수들이 거의 없었으리란 추론이 가능하다. 북한 요청을 정부가 대행(?)한 것이라면 더 문제다. 한국 경제 기둥인 대기업 총수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북한에 심어줄까 하는 우려에서다.

경제인들을 만난 북한 리룡남 내각 부총리는 "북남 사이 경제 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신심이 생긴다"며 남북 철도 사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대북 제재가 전혀 풀리지 않은 가운데 철도 등 경협 추진을 사실상 공식화한 셈이다. 글로벌 경영을 하는 대기업 총수들로서는 리 부총리는 물론 같이 앉은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그리고 미국까지 의식해야 하는 그야말로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이었지 싶다.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 투자는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다른 국외 방문과 달리 이번 평양 방문에서 대기업 총수들은 들러리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짧지 않은 평양 방문 동안 잘 충전해 경제 현장에서 열심히 뛸 수 있는 활력이라도 얻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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