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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북한 방문, 북한 비핵화 앞당길 동력 만들 가능성

교황청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환담한 뒤 교황이 선물한 묵주 상자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황청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환담한 뒤 교황이 선물한 묵주 상자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사적 사건'이라 불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실행될지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물리적 압력과 제재도 큰 부담이지만 세계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교황이 북한을 방문, 평화를 역설하는 것 역시 북한으로서는 큰 압력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교황의 방북은 경호 부담이 큰 데다 사제도, 신자도 전혀 없는 신앙의 불모지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어서 많은 난관도 예상되지만, 교황이 결단을 내린다면 한반도 평화정착을 향한 발걸음에 큰 추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만들어지고 있다.

◆교황 방북의 의미는?

교황이 분쟁지역을 방문해 평화를 기원하고 화해를 주선하는 것은 사도(使徒)의 의무로 받아들여진다.

이를 고려할 때 갈등을 중재하고 전 세계 평화를 촉구해 온 교황청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교황의 방북이 성사되면 평화체제를 받아들이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북한의 정상국가로의 변모를 촉진할 수 있는 세계사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후 5년 남짓이지만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종교의 장벽을 뛰어넘어 세계인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도가 됐다. 트위터 팔로워가 3천만 명을 넘어섰고, 리트윗 기준으로 재임 시 오바마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 1위의 트위터리언이다. 냉전 시대 재임했던 요한 바오로 2세가 공산주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힘을 쏟았고, 베네딕토 16세가 세속주의를 거부하고 정통성을 중시하며 '보수 교황의 시대'를 이끌었다면, 첫 남미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담장을 넘어 불평등과 빈곤 등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폭넓은 정책적 의제를 포용하는 '개혁 교황의 시대'를 열었다.

교황은 '세계에서 가장 노련한 국제정치인'이라는 평도 듣고 있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콜롬비아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에 막후 역할을 했고, 난민 위기와 기후 변화 문제에도 목소리를 낸다. 성사된다면 교황 방북은 한반도 비핵화·평화 협상의 국제적 지지를 확산하는 기폭제일 뿐 아니라, 협상의 장애물이 돌출하더라도 과거 회귀를 막는 제어장치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교황의 이런 역할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이번에 문 대통령을 통해 평양 초청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교황청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교황의 방북이 성사될 경우 평양에서 교황의 집전으로 이뤄질 미사는 북한의 개방·개혁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전망이다. 1970∼80년대 요한 바오로 2세의 공산주의 폴란드 방문은 사회주의 붕괴에 큰 역할을 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뜻을 담은 교황의 방북은 한편으로는 북한과 비핵화 문제를 담판 지어야 하는 미국에도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비핵화를 향한 여정에서보다 큰 책임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8월 방한 때 한국 평화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이 특별한 것으로 확인됐다.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에 교황 방한을 성사시킨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땅에 첫발을 디딘 뒤 첫 일성으로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했다. 아시아 첫 방문지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를 선택한 교황의 '축성(祝聖) 기도문'이라는 평가도 낳았다.

◆여러 조건에 들어맞고 있다

교황청 관계자들은 시기적으로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을 수락할 여건이 갖춰져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교황이 최근 "내년에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어 교황청 외교가에서는 교황의 내년 일본 방문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교황은 해외 순방 시 지리적으로 가까운 여러 나라를 묶어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년에 일본을 방문하는 길에 자연스럽게 북한도 함께 들를 수 있다. 교황이 북한을 방문할 만한 여건은 이미 조성돼 있었던 셈이다.

교황이 평양 땅을 밟는다면 역대 교황 가운데 처음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된다.

북한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통치하던 시절인 2000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평양에 초청했으나, 교황청 내부 사정으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배양일 전 교황청 대사는 "2000년 당시에는 교황의 경호 문제에다 신자와 사제가 없는 곳에서 미사를 드리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해 성사되지 못했다"고 했다.

교황청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시절인 1980년대 말에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공식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최근에도 가톨릭 구호단체를 통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등 북한과 공식·비공식 접촉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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