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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 전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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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깡통차기, 딱지치기, 막대놀이, 고무줄놀이, 구슬치기, 말 타기 등이 아이들의 주된 놀이였던 1950~60년대 큰 동네에는 전파상이 한두 개 있었다. 주된 업무는 라디오를 고치는 일이었다. 라디오가 귀한 시절이라 기술자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동성로의 점포들은 수리보다는 라디오, 축음기를 주로 판매하였으니 주인들의 자부심이나 사회적 위상도 높은 편이었다.

중앙통이나 교동시장, 서문시장 주변 같은 번화가가 아닌 약간 후진 동네 전파상은 큰 돈은 벌지 못했다. 매매할 물건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깟 중고 라디오 몇 대 팔아봐야 남는 게 적었기 때문이다. 라디오나 축음기 수리가 주업이었지만 축음기 음반을 팔아 버는 수입이 더 많았다. 날이 밝고 출근시간 무렵이 되면 음악이 시작된다. 하루 종일 길가를 향한 스피커는 악을 쓰듯 큰 소리를 내었다. 생계가 걸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노래는 밤에 가게문을 닫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요즘 같으면 소음공해의 주범으로 고발을 당하여도 여러 번 당했을 것이다. 특히 12월이 오면 크리스마스 케롤이 유난스럽게 소란을 떨었다. 전파상마다 조금씩 버전을 달리하는 크리스마스 케롤을 경쟁하듯이 크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 전파상을 통해 음악감상도 하고 최신곡도 배우는 덕에 소란을 참고 견디었다.

싱싱싱, 유아마이 션샤인. 다이아나, 오캐롤, 세드무비 같은 서양 노래도 전파상을 통하여 접하던 시절이었다. 클리프 리차드의 디영원스, 탐 존스의 고향의 푸른잔디, 딜라일라 등도 주 메뉴였다. 조영남이 이 무렵 탐 존스의 딜라일라를 번안곡으로 불러 많은 인기를 얻었다. 대개는 우리 가요를 내보내지만 주인의 취향에 따라 외국 곡을 가끔 내보내는 전파사도 있었다. 자신이 최신 음악의 전도사라는 사명감으로 동네 디스크자키 노릇도 했다. 봉봉 사중창단, 뚜아에 모아, 김세환, 송창식, 윤형주 등의 가수들도 전파상 덕에 유명세를 타게 된다. 처녀뱃사공, 이별의 종착역, 외나무다리, 꽃집 아가씨,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 등이 전파상의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남진의 가슴아프게, 최희준의 하숙생과 맨발의 청춘, 대구출신 남일해의 빨간구두 아가씨와 오기택의 아빠의 청춘, 김상희의 대머리 총각, 한명숙의 노란샤쓰의 사나이,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잔 등이 이 무렵에 인기를 끌었던 노래들이다.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에는 행진곡 같은 빠른 템포의 곡을 틀어주는 재치있는 전파상 주인도 있었다.

메이저급 전파사들은 TV가 나오면서 시민소리사는 삼성, 신광소리사는 금성 판매전문점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아세아, 서라벌, 대지, 지구 한일 소리사는 레코드판만 전문으로 팔았다.

이 무렵 김광석의 아버지도 방천시장에서 번개전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린 김광석은 아버지가 틀어주던 노래를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던 것이다. 방천시장에 있던 광석이네 전파상은 서울로 이사를 갔다. 부자가 모두 고인이 되었지만 오늘날의 방천시장은 번개전파사의 아들 김광석이 부른 노래의 힘으로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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