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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미래차 선도도시 대구의 '아픈 손가락'

박상구 경제부 기자
박상구 경제부 기자

대구의 대표 업종은 누가 뭐라 해도 자동차 부품이다. 지역 제조업 전체 생산액의 27%가 자동차 부품에서 나온다. 업체 수만 해도 800곳이 넘고 종사자 수는 5만여 명에 이른다. 단일 업종으로는 지역에서 가장 비중이 크다. 오랜 시간 자동차 부품업종이 지역에 자리 잡으며 공구·산업기계 분야도 함께 성장했다.

오랜 시간 경쟁력을 다져온 데다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서 전기자동차 선도도시를 표방하다 보니 자동차·기계 관련 국제 행사가 대구에서 열리는 경우도 많다. 이번 달에만 대구국제미래자동차엑스포와 대구국제기계산업대전이라는 굵직한 행사가 연이어 열렸다. 1일 개최된 대구국제미래자동차엑스포에는 6만5천 명의 방문객이 몰렸고 이어 14일 열린 대구국제기계산업대전에서는 상담액 규모만 1억5천298만달러에 달할 만큼 큰 성과를 거뒀다.

유망 기업들이 공들여 개발한 기술을 소개하는 소중한 자리였지만 지역 제조업계는 마냥 웃지 못했다. 어렵사리 해외 바이어를 잔뜩 불러놓고도 내세울 기술력을 가진 업체가 많지 않아서다. 방문객과 바이어는 커다란 부스를 차리고 새 기술을 소개하는 대기업을 비롯해 에스엘, 평화홀딩스 등 지역 대표기업에 몰렸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 자동차 부품 2차 협력업체 대표는 불안감을 호소했다. 그는 자동차 산업 구조가 이처럼 급변하고 있고 행사 참가 업체들도 미래차 시대에 대비해 각종 신기술을 선보이는 상황에서 혼자 도태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미래차에 맞는 부품을 만들고 싶어도 연구 인력이 전무하고 단순히 공장만 가동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미래차 시대에 대응하는 지역 자동차 부품업체의 모습이 극과 극이다. 삼보모터스, 평화오일씰 등 지역 대표기업의 경우 전기차 개념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3년 전부터 준비해 신기술 개발에 성공한 경우가 적잖지만 영세업체는 사실상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있다.

800여 개에 달하는 대구 소재 자동차 부품·기계 업체 중 1차 협력업체는 50여 곳이다. 나머지는 모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재정 상황이 열악한 2, 3차 협력업체다. 이들 대부분이 자체 기술연구소를 갖지 못하고 단순 생산 부품만 지역 내에 있는 원청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만드는 부품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다. 미래차 선도도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구시의 '아픈 손가락'이 된 모양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손놓고 있는 지역 영세업체에 결국 정부·지자체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금융 지원도 중요하지만 기술 지원이 급선무다. 2, 3차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기술이전 형식의 R&D를 지원해 미래차 시대에 맞는 부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반도체 등 타 업종과도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줘야 한다.

대구시가 미래차 선도도시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오랜 시간 지역에 뿌리내린 자동차 부품산업 역량 때문이다. 그 역량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2, 3차 협력업체 몫도 적잖다. 대구시가 전기차 보급만이 아니라 미래차 자체 생산 역량까지 내다보고 있다면 이들과도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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